걷다

티벳 ① - 내가 속해있지 않은 세상 속으로

호랭Horang 2007. 9. 9.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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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2007.08.25~2007.09.02)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일은 - 대개 - 즐겁지만, 때로는 감당이 어렵기도 하다. 사실 꼭 티벳일 필요는 없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건데 티벳은 Best Place였다.

출발하기 전 부서 사람들이 고산병에 대한 겁을 많이 주었고, 친구들은 나의 여행관 내지는 더 크게는 인생관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해주어 나는 다소, 아주 약간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었다. 게다가 나의 게으름 탓에 티벳 입경허가서 준비도 늦게 되는 바람에 이번 여행 확 때려치워...? 하는 생각도 순간적으로 했었다. 그러나 그러는 와중에도 날짜는 꾸역꾸역 지나가고 어느 새 나는 다시 짐을 꾸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티벳지도. 라싸를 중심으로 주황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내가 주로 다닐 곳이다.


청두(成都)로 들어가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라싸로 향하는 비행기를 탄다. 청두에 도착할 때까지도 난 우리 일행이 누구인지, 몇 명이나 되는지 몰랐다. 혼자가 되면 혼자 가고, 둘이 되면 둘이, 10명이 되면 10명이 다닐 작정이었다. 그런 건 상관 없었다. 관계에 지쳐 도망치는 나는, 여행을 여행으로만 하고 싶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청두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내 옆에 다른 투어팀의 가이드 아저씨가 앉았다. 직업이 직업이라서 그런지 아저씨는 뭔가 계속 얘기하고 설명하고 싶어했다. 평소 같으면 낯을 가려 - 낯가린다는 말에 코웃음 칠 지인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 낯가리는 거 맞다(ㅡ,.ㅡ) - 혼자 조용히 가는 것을 선호했을 나도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모르겠으나 낯선 사람들과 말하는게 편해지고 좋아지는 것 같다. 어쨌거나 항공사가 아시아나로 결정된 것을 보니 10명이 넘겠군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청두에 도착해보니 의외로 우리 일행은 단촐한 4명이었다. ^^

다음 날, 본격적인 여행의 첫날이다.
일행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같은 회사 사람들이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다섯 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이 곳, 나와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서 우연히 만난 여행 친구들 치고는 참으로 희한한 인연이다. 대기업이라 그런지 직원들이 징그럽게 많긴 많은가보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 마음 비우고 기도하고 싶은 사람도 오죽이나 많은 모양이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고산증 약을 먹는 것. 하늘에서 가까운 동네답게 하늘은 파랗게 맑고 햇볕은 따뜻하다못해 따가웠지만 바람은 서늘했다.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 인솔자인 여행작가 안진헌 선생님의 친구 집에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친척이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해서 온 친척과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잔치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니 야크버터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는 밀크티를 연신 가득 채워주며 환영한다. 때묻지 않은 사람들의 미소가 아름답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수줍음이 많으셨던 아주머니. 버터를 젓고 계신다.


차를 다섯 잔은 족히 마신 것 같다. 다 마시지도 않았는데 한모금만 마시면 가득가득 끊임없이 따라주어 당황했지만, 인심이 싫지 않았다.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신이 난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따뜻해진다. - 이럴 때 나의 표현력의 빈곤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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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어 놓고,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조캉 앞으로 갔다. 시원하게 펼쳐진 조캉 앞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후에 조캉은 내가 라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의 하나가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파란 하늘과 스님들의 붉은 옷. 라싸의 심장 조캉 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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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루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만다라 호텔 옥상에서 밀크티를 또 한잔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티벳은 정말 신기한 도시이다. 하늘과 산과 물과 땅이 맞닿아 있는 곳, 행복한 표정으로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 너무나 고요하고 평온해 보이는 곳,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가슴아픈 역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곳.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곳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조캉과 바코루의 모습. 시계방향으로 돌아야 한다. ^^


바코루는 마니를 돌리면서 기도하는 사람들부터 양 옆에 늘어선 기념품 가게들, 노점들, 손님을 끌어모으려는 가게 주인들, 흥정하고 사진찍는 관광객들,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군상의 집합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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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랜드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일찍 돌아왔다.
고산병 증세가 살짝 나타나는지 어질어질하고 머리도 조금 아프고 열도 나고 콧물도 난다.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면 안되니까 홍징티엔(고산증약)먹고 산소 좀 마시고 자야지...

짐을 줄이려고 하다가 너무나 많은 것을 빼먹고 왔다. 이번 여행은 내 D80이랑 같이 하는 첫 여행인데, 배터리를 안가져왔다. -.-; 지금 있는 배터리로 3일이라도 제대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딴 건 없어도 없는대로 대충 살겠는데, 이건 참 난감하다.

아까 먹은 타이레놀 효과가 나타나는지 열은 좀 내린 것 같은데 눈과 몸의 근육이 풀리는 느낌이다. 안선생님과 꼼꼼한 여행메이트 현상이를 믿고 론리플래닛은 아예 펴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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