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티벳 ② - 無題

호랭Horang 2007. 9. 12.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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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조캉 앞에 가 보려고 아침잠을 떨치고 일찍 일어났다. 아침잠이 많아 왠만해선 이런 일이 별로 없는데, 이 곳에선 왠지 빨리 일어나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직 해도 뜨기 전 어슴푸레한 그 이른 새벽, 조캉 앞은 이미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관광객과 상인들이 나오지 않아 조용한 시간, 오로지 절하는 사람들의 손바닥이 땅바닥을 쓸고 지나가는 소리와 입안으로 조용히 중얼거리는 기도 소리만이 조캉 앞을 울리고 있었다. 한 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기도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기도하는 모습이 평안해 보인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기도하게 하는가. 욕심도 없어보이고, 괴로움도 없어보이고, 행복해만 보이는 이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기도할까.



아침을 간단히 먹고 조캉에 들어가서 내부법전을 보기로 했다. 관광객은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대신 돈을 내야한다. -.-; 조캉이 완성되면서 양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의 라싸 Rasa에서 신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의 라싸 Lhasa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그만큼 조캉은 티벳에 있어 유서깊고 신성한 중심 사원이다.

실망스럽게도 건축물과 벽화, 기둥의 부조는 세련되지 못했고 어설펐으며 조악했다. 진동하는 야크 버터 냄새는 머리를 아프게 했다. 그러나 티벳 사람들은 그 사원을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야크 버터로 촛불을 밝히고 시주하고 그 곳에서 기도한다. 내 잠시 동안의 실망은 곧 부끄러워졌다. 비교해서는 안될 것을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나도 모르게 비교하고 평가하고 있었다.
앙코르와트에서 본 사원이 그 정교함을 뽐내는 귀족의 예술이라면 이 곳의 사원은 너무나 너무나 인간적이고 평범하다. 그러나 이 평범한 공간은 바로 거기에서 끝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종교이자 생활의 이유이자 살아가는 힘이 된다.


조캉을 본 후 바코루를 따라 들어가는 구시가로 발길을 옮겼다.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는 건 내가 여행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코스이다. 시장 골목에는 사람사는 냄새가 난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내가 이방인임이 오히려 자유롭다. 이 곳에서 정말 많은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아직은 세상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용기와 두꺼운 얼굴이 부족한 듯 하다. (물론 카메라 배터리도 부족했다 ㅡ,.ㅡ)


모르는 곳을 헤매는 것은 즐겁고 흥미있는 일이지만 또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참을 시장통에서 걷고 나니 살짝 피곤이 몰려온다. 평소엔 이 정도 걸어서는 끄떡도 없으련만 역시 강철 체력을 자랑하는 나에게도 해발 3500m의 고산은 만만한 곳은 아닌 것 같다.

오후엔 세라곰파로 향했다. 세라곰파는 승려를 교육하는 불교대학과 같은 곳이다. 이 곳은 정말 흥미로운 곳이다. 조용하지만 그 고요 안에는 공부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고 있었다.

3시에 초라 - 본당 옆에 있는 야외 정원 - 에서는 승려들이 불교 교리에 관한 질의를 주고받는 교리 문답이 이루어진다. 손뼉을 치며 문제를 내는 승려나 눈을 반짝 거리며 답을 말하는 승려나 모두 확신에 가득차 보이고, 또 행복해 보인다.



열정이 있는 사람들의 눈은 보고 또 보아도 지겹지 않다. 주고 받는 대화를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이 후딱 지나버렸다. 우리가 자리를 뜬 후로도 한참동안 초라에서는 박수소리와 승려들의 문답소리가 울렸다.

세라곰파에서 나와서 그 유명하다는 포탈라궁으로 갔다. 포탈라 입장권을 아직 구하지 못해 내부는 보지 못하고 밖에서 포탈라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저녁 때는 Kichu hotel 정원에서 정말 맛있는 밥을 먹었다. 네 명이서 배불리 먹었는데도 150위안이 채 안나왔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내일의 등반을 위해 싸구려 바람막이 자켓을 하나 샀다. 여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과일을 왕창 바가지를 썼다. 괘씸하다. 그래봐야 돈 몇 천원 이라지만, 돈 몇 천원 갖고 사람을 이렇게 기분 나쁘게 하다니! 나쁜 놈!!! 방에 돌아온 이후에도 분해서 약 20분간 아무 것도 못했다.

아침에 그 욕심없이 기도하는 티벳 사람들에게 감명받고, 저녁 때 저 악독한 중국인 사기꾼에게 열받으니 더더욱 티벳의 독립을 지지하게 된다. -.-; 한족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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