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티벳 ③ - 길 위에서

호랭Horang 2007. 9. 14.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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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역시 조캉에서 아침을 맞았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어제 과일가게 아저씨에게 속아 분한 마음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조캉은 과연 사람의 욕심을 버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

오늘은 간덴 곰파에 가는 날이다. 여기까지 쓰고는, 내가 그 때 무슨 생각을 했었나 하고 수첩을 뒤적여 본다. 그 날 일기에는 이렇게 써있다.

2007. 8. 28. 火
너무 피곤해서 일기 생략.

ㅡ,.ㅡ 여기는 소설을 쓸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어쨌거나... 끄응... 출발해보자. 티벳의 도로에서는 - 대부분 왕복 2차선인데 - 추월이 밥먹듯 이루어진다. 그러다보면 마치 치킨게임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순간도 있다. 내 차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전방의 차를 볼 때면 정말 스릴 만점이다. 속도위반 카메라가 없는 대신 도로 중간중간에 위치한 공안에 들러 구간별 소요 시간을 체크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공안의 노력(?)과 관계없이 버스는 신나게 앞차를 추월해 일찌감치 다음 번 공안이 있는 지점 근처에 도착, 적당히 쉬어가기를 반복한다.


간덴 곰파는 해발 4500m에 자리한 사원이다. 간덴은 달라이라마가 속한 티벳 최대 종파인 겔룩파 최초의 사원으로 잠파 - 미륵불 - 가 사는 낙원을 의미한다. 산 정상에 이런 규모의 사원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간덴을 둘러싼 코라를 돌아본다. 펄럭이는 타르쵸와 룽다. 그리고 코라를 도는 순례자들과 사람들. 간덴의 코라는 산의 능선을 따라 둘러져있어 전망이 환상적이다. 가슴이 트인다.




너무 급하게 고도를 높여서 그런지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심지어 숨쉬는 것도 쉽지 않다. 사원을 도는데 모두 입술이 파래졌다. 그래도 걷고 걷고 또 걷는다.




당초엔 절밥을 먹을까 했었는데 다들 몸상태가 양호하지 않은 관계로 점심은 라싸로 돌아와서 먹기로 하고 산을 내려왔다. 라싸로 돌아오니 얼굴에서 열이 화끈 났다. 그간 고산에서도 숨이 조금 가쁜 것을 빼고는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았었는데, 이 날 이후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갑자기 내려올 때마다 - "내려왔다"고 해봤자 3,500m지만 - 이런 증세에 시달렸다. 참고로 이 증세에는 밥이 직효다. ^^;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 티벳 제 2의 도시, 시가체로 출발했다. 역시 가는 길에도 장관은 계속 되었다. 



버스가 갑자기 멈추어 섰다.
오체투지를 하는 스님이었다. 오체투지란 이마, 두 팔꿈치, 두 무릎의 신체 다섯 부위를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면서 순례를 하는 고행이다. 스님은 암도에서 출발해서 우리가 가는 시가체까지 가는 중이라 했다. 그리고 1년 7개월째 오체투지를 하고 계신다 했다. 왠지 스님의 정신을 흐트러트리는 것 같아 말을 걸기도 너무 미안했다. 스님이 괜찮다고 하셨지만 사진을 찍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스님의 앞치마에 돈을 꽂아드리고 한참을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저 먼 길을 가시는 걸까. 어떤 확신을 갖고 이 고행을 택하신 걸까.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평온하면서도 확신에 찬 눈빛으로 나를 감동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세 시간 뒤면 도착할 시가체에 저 스님은 언제쯤 도착하실 수 있을까. 


가다가 고장난 로컬 버스를 발견했다. 방향이 같기에 그들을 우리 미니버스에 태워 주었다. 할머니들은 처음에 내가 한족인 줄 알았는지 다소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내가 외국인임을 알자 한 할머니가 "할로~"라고 말하고, 다른 할머니들도 모두 따라서 합창을 하신다. "할로~" 귀엽다. 
내가 유일하게 할 줄 알았던 티벳말은 인사 뿐이었다. 대화는 항상 짜시델레(안녕하세요)로 시작하여 또쩨쩨(감사합니다)로 끝냈지만, 그래도 그 나머지를 중국말로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영 찜찜하고 미안했다. 이렇게 쓰고보니 내가 중국말을 뭔가 엄청 잘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실상 우리의 대화는 대충 이런 것이었다. ☞ 내가 예쁘게 생겨서 한국사람 일 줄 알았다 등등 ㅎㅎㅎ

잘 통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행길에 현지인들과의 대화는 늘 즐겁다. 그리고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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