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티벳 ④ - 둘루, 짜시델레

호랭Horang 2007. 9. 19.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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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문득 기억이 흐릿해지는 그런 때가 있다.
아마도 나에겐 시가체가 그런 곳이었던 것 같다. 반나절 동안 타시룬포 곰파만 방문하고 바로 이동한 관계로 머물렀던 시간이 짧은 탓인가. 이 곳에 대한 기억이 별로 많이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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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는 짱(Tsang)으로 불리는 남부 티벳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한 때 티벳의 수도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라싸에 이어 티벳에서 두 번째로 번창한 도시이고, 이 곳에 있는 타시룬포 곰파는 바로 제 1대 달라이 라마가 지은 사원으로 역대 판첸 라마의 영탑을 모신 공간이다. 빛바랜 옛 영광을 나타내는 듯 타시룬포의 규모는 웅장했다. 아침 일찍 갔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기도하는 티벳 사람들은 많았다. 그러나 곧 관광객처럼 보이는 한족 단체들이 밀려왔고, 시끄럽게 기념사진을 찍고 떠들었다. 제발... 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타시룬포의 코라가 유난히 멀어 보이고 힘들게 느껴졌었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난다. 아마 몸 상태가 여전히 좋지 않았나보다.
코라가 좋은 것은 관광객들이 없기 때문이다. 코라를 한바퀴 돌아보는 것은, 실제로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지만 반 트랙킹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하여 꺼리는 건지 아니면 시간이 많이 걸려서 단체 관광코스에서 잘 빠지는 건지 관광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안선생님 덕분에 이번 여행에서 각 사원의 코라를 다 돌아봤는데 힘들었지만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 것 같다.


점심식사 후 간체로 이동했다. 시가체가 티벳 제 2의 도시라고 하지만 라싸에 비하면 번잡하지 않은 작은 마을인데, 미니버스가 비포장 도로를 한참 달린 끝에 나온 간체는 그야말로 조용한 시골마을 그 자체였다. 티벳에서 두번째, 세번째로 큰 도시가 이런데 다른 지역이야 말할 것도 없다.



사원을 둘러보고 나와서 티벳 마을의 골목을 천천히 걸어본다. - 한족이 이주하여 자리잡은 지역과 티벳탄들이 주로 살고 있는 지역은 나뉘어져 있다. - 시골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우리를 더욱 신기하게 본다. 그러나 그 눈빛에는 경계가 아닌 친근함이 담겨있다.


코를 찔찔 흘리는 꼬마 둘이 앉아있다가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가 "짜시델레"하고 인사를 건네자 배시시 웃더니 그 중 한 녀석이 알아듣지 못할 티벳말로 뭐라고 말을 건다. 이 앞은 자기 집이라는 것 같기도 하고...
여행 중에 만난 티벳 아이들은 수줍어하여 말을 못걸고 쭈뼛거리거나 아니면 단체로 몰려들어 신기한 듯이 바라보거나 그도 아니면 돈이나 먹을 것을 달라는 아이들이었는데 이 녀석은 꽤 용감하다.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다. 옆에서 우리 모습을 쳐다보던 동네 티벳 아저씨가 있길래 물어봤더니 "둘루,둘루"라고 대답한다.
"얘 이름이 둘루예요?"
"맞아요. 둘루"
코는 흘리고 있지만 단추를 목까지 깔끔하게 채운 매무새나 또박또박 말하면서 짓는 표정이나 보통 똘똘한 것이 아니다. 줄만한 것이 없나 생각하다가 내가 나름대로 아끼는 4색 볼펜을 줘버렸다. 공부 열심히 해~ 하니까 볼펜으로 막 쓰는 척을 한다. 귀여운 녀석 같으니라구.


간체에도 짧은 시간 머물렀지만 시가체보다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역시 사람들과 눈을 많이 마주쳤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여행 내내 그들로부터 평온함, 자연스러움, 욕심없음, 따뜻함을 느낀다. 고맙고 또 고맙다. 그런데, 내가 그들에게 주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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