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티벳 ⑤ - 두고오다,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호랭Horang 2007. 11. 1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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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잠을 좀 자서 그런지 오늘은 한결 덜 피곤하다. 아니면 낮에 먹은 Red Bull의 영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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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체를 출발, 오늘은 다시 라싸로 돌아간다. 속도 제한으로 라싸까지는 7시간 정도 걸린다 하니 오늘은 아마 차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듯 싶다. 그러나 가는 길에는 봐도봐도 여전히 놀라운 풍경들이 계속 되어 지루하지 않다. 



 

사람이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어제, 그제, 시가체와 간체를 돌고 해발 4,900m의 얌드록초까지 올라갔다가 3,500m의 라싸로 돌아오니 이렇게 몸과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지칠 대로 지친 일행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라싸 시내에 단 하나 있다는 한국 식당 '아리랑'으로 갔다. 찰진 쌀밥에 된장찌개, 김치찌개까지 먹고 나니 기분이 날아갈 듯 했다. 여행 중 왠만해서는 한국 음식을 찾지 않는 내가 이 정도였던 것을 보면 컨디션이 역시 정상은 아니었던 듯 싶다.

다음 날은 아침 일찍 일정을 시작했다. 원래 마지막날 보기로 했던 포탈라궁의 입장이 하루 당겨졌기 때문이다. 포탈라는 하루 관광객 수가 제한되어 있는 관계로, 현지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표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원래 입장료는 100元이나 이와는 전혀 상관없이 300元이나 되는 웃돈을 주고도 입장권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포탈라는 티벳이 통일되면서 라싸로 수도를 옮긴 7세기경 만들어진 - 물론 지금 그 당시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며, 달라이라마 5세 때 다시 만들어지고 그 후에 보수되고 있는 건축물임 -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궁전이다. 포탈라궁은 라싸의 상징물과 같은 것으로 황금지붕과 백궁, 홍궁이 푸른 하늘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이미 두번째 티벳 이야기에서 그 외부 사진을 보신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들어가게 된 포탈라 내부는 솔직히 큰 감동을 안겨 주지 못했다. 수많은 방 중에서 들어갈 수 있는 방은 극히 제한되어 있고, 그나마 입장 후 1시간 내에 관람을 마무리 해야 하는 등 여러 모로 실망이었다. 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포탈라궁의 신비로움은 전혀 느끼기 어려웠다. 밖에서 볼 때가 최고로 멋지다!

포탈라에서의 한 시간이 지난 후 당초 계획이었던 남쵸로 출발했다. 남쵸로 가는 길에 유목민들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춤도 추었다. 안진헌 선생님 말씀으로는 여행하면서 별별 사람을 다 만나 보았지만 해발 5,200m에서 춤 추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고 하셨다. -.-;


이번 여행에서 이 곳 티벳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세 가지 생각을 했다.

(1) 여행자의 이기심, 그리고 반성 
이 사람들은 계속 이렇게 못 살았으면 좋겠고, 천진난만하게 웃었으면 좋겠고,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나도 결국은 역시 이 사람들을 자극하고 변하게 만드는 침략자이자 파괴자의 하나일 뿐인데.

(2) 누군가와 같이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정이 좀 길기도 한데다가 너무나 닮아 잘 어울리는 윤상/승희 부부와 함께 다녀서 그런지, 여행메이트인 현상이가 많이 챙겨줬지만 그래도 외로운 생각이 들었나보다.

(3) 나는 정말 하나님께 감사한다.
신이 주셨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강인한 체력과 튼튼한 위장. (-.-;)



남쵸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로,  하늘과 호수가 만나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해서 그 이름도 "하늘 호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남쵸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티벳 자치구에서 가장 큰 호수로, 걸어서 호수 한 바퀴를 돌려면 18일이 걸린다 하니 내 눈엔 호수가 아니라 마치 바다처럼 보였다. 아무데서나 셔터를 눌러도 그대로 작품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미 간체에서 둘루를 찍고난 후 배터리가 나간 관계로 나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사진이 없으니 머릿 속에, 가슴 속에 남겨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남쵸의 공기가 허파 깊숙이까지 들어오는 느낌이다.


유목민들을 보며, 조캉의 불상을 보며,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며, 눈을 들면 어느 곳에서나 항상 보이는 산을 보며, 바다같은 호수 남쵸를 보며 내가 다시금 느낀 것은 나답게, 거침없이 자유롭게 살아야겠다는 생각...

라싸로 돌아왔다. 어느 새 마지막날.
오늘도 여전히 아침을 먹으러 Tash 레스토랑에 갔다. 라싸에 있을 때면 매일 이 곳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었다. 이제 마지막이 될 밀크티를 마시며 여행을 뒤돌아 본다.

9일 동안의 나는 그저 즐거웠고 신기했고 행복했고 감사했다. 티벳에서의 모든 것은 매우 크고, 매우 높고, 매우 험했다. 티벳에서 만난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소박하고, 가장 착했으며, 가장 잘 웃었고, 가장 따뜻했다. 언제나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사람이었고,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티벳에서 이 사람들 때문에 두 번 눈물이 날 뻔 했다. 티벳에서는 말이 많은 자는 힘이 들고, 뛰는 자는 숨이 차다. 생활의 빈궁함과 정치적 탄압 속에서도 불평 불만없이 늘 평온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자꾸 웃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 종교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그리고 또 그 다음 삶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마지막날이 되니 다시 생각이 처음으로 돌아온다. 무엇이 나를 이 곳으로 이끌었을까. 저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내가 고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모습을 다시 살폈다. 그리고 두고가기로 한다. 꽉 쥐었던 손을 열어 놓고가기로 한다.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이 곳에.

 

우리는 세상 모든것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바람으로부터는
세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하고,

강으로부터는
더 큰 세계로 나아감을 배워야 하며,

인간이 만든 기차로부터는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간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 류시화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2007년 늦은 여름의 티벳 여행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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