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캄보디아 첫번째 이야기

호랭Horang 2006. 6. 15. 02:40
반응형
** 홈페이지를 제 때 옮기지 못해서 사진이 다 날아가버렸습니다. 나중에 혹시 찾게 되면 다시 링크하겠습니다 **

앙코르 앙코르 (20060505 ~ 20060510)

캄보디아 시엠리업. 출장 길에 들른 여행지도 아니고, 친구나 동생이랑 함께 미리 계획한 여행도 아니었다. 벌써 회사엔 며칠째 나가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마음은 천근만근 이다. 그냥 무작정 나를 새로운 어떤 곳에 "풀어두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시엠리엡행 비행기에 오르기로 했다. 전부터 가보고 싶던 곳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혼자 가게 된 것은 꼭 의도했다기 보다는, 이제 내 주위에는 평일날 갑작스럽게 4~5일씩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별로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다. 그렇다고 폼생폼사인 내가 깃발들고 패키지 여행을 따라갈 순 없지 않은가. -.-; 혼자 하는 여행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간의 것들은 모두 2~3일 정도의 짧은 나들이 수준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여행계획은 조금은 색달랐지만 별달리 긴장되지는 않았다.


시엠리업 Siem Reap 공항. 공항이라기엔 굉장히 낯선 풍경이다.

가는 비행기는 원동항공이라는 작은 전세기였다. 덕분에 마치 TV에서 대통령이 비행기에서 내릴 때처럼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 바닥에 직접 내렸다. (왠지 손을 흔들고 싶었지만 -.-; 흔들데가 없어서... 참았다.) 더운 바람이 훅 하고 폐 속으로 들어온다. 공항은 작고 열악했으나 사람들의 인상이 너무 좋다. 더워 죽겠는데 선풍기 하나 달랑 틀고도 긴 팔 제복들을 입고 있다. 그런데도 다들 웃음을 머금은 표정들이다. 줄을 서서 비자를 받는데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이 우리가 한국 사람인 걸 알고 장난삼아 "빨리빨리"라고 계속 말한다. 

같은 호텔에 묵게 된 한국 사람 나영을 만났다. 베트남에 있는 친구가 귀국하기 전에 함께 캄보디아를 여행하기로 했다고 한다. 숙소에 오니 나영의 친구 소연은 벌써 와있다. 일단 대강 짐을 풀고 저녁시간이 다 되어 우리는 함께 식사를 하러 시내로 나갔다.

시엠리업은 참 신기한 곳이다. 관광객들의 물결로 거리는 호텔, 식당으로 가득 차 있다. 동네가 온통 앙코르와트 유적 하나로 먹고 사는 그런 곳이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서 내내 볼 수 있었던 깔끔한 호텔들 바로 옆에는 다 무너져가는 판자집들이 즐비하다. 저녁을 먹으러 나간 다운타운에서도 먼지가 듬뿍 앉은 먹거리를 파는 노점상과 맞닿은 길에 관광객들을 타겟으로 하는 분위기 좋고 럭셔리 해보이기까지 한 식당들이 의외로 많이 보였다.  



소연은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휴직을 하고 2년째 베트남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삶을 대하는 방법은 참으로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걸 가끔 잊어버리고 산다. 너무 앞으로 달려가기만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새삼 든다. 숙소에 돌아와서 이번 여행의 주제를 정했다. '버리는 여행'. 고민도 버리고, 앙금도 버리고, 욕심도 다 털어버리는 여행으로.

*          *          *          *          *

다음 날, 더운 한 낮에는 구경 다니기가 어렵다고 하여 아침 7시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나영, 소연도 별다른 계획이 없어 우리는 함께 투어를 하기로 하고 대강의 코스를 잡았다. 뚝뚝이라는 오토바이+리어카를 하루동안 타고 다니기로 흥정을 했다. 하루 $10이면 아침 7시부터 저녁 먹을 때까지 어디든지 데려다 준다.


뚝뚝을 타고가며 찍은 사진. 첫날 뚝뚝이 기사는 영어를 꽤 잘하는 청년이었다.

뚝뚝의 안좋은 점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최고로 아쉬운 것은 기사가 앞을 향해 있고 게다가 오토바이 엔진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기사와 대화를 거의 나눌 수 없다는 점이다. 여행지에서 기사는 누구보다도 좋은 가이드가 될 수도 있는데, 그 점이 못내 아쉽다.

아침부터 꽤 찌는 듯 하다. $40을 주고 앙코르 유적지를 삼일동안 볼 수 있는 입장권을 끊었다. (왼쪽)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주는데 벌써부터 더위에 지쳤는지 내 표정이 영 떫떠름하다. 이것이 바로 열대 몬순 기후인가...

답사 첫날은 앙코르와트를 제외한 앙코르 중앙 부분을 보기로 했다. 이 엄청난 규모의 앙코르 유적이 본격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200년이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아직도 무성한 수풀에 가려져 발굴되지 못한 유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처음 들른 곳은 앙코르톰에 가기 바로 직전에 위치해 있는 박쎄이 참끄롱이다. 시바신에 바친 힌두사원으로 알려진 이 곳은 앙코르톰의 위엄과 명성에 가려 그런지 관광객들이 많지 않았다. 가파른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 보았다. 정말이지 이런 계단은 난생 올라본 적이 없다. 박쎄이 참끄롱을 포함하여 앙코르 사원들의 중앙성소의 높은 탑으로 가는 계단은 매우 가파른데다가 계단 폭도 발 길이 하나가 채 안될만큼 매우 좁다. 이는 이 계단이 인간이 오르내리라고 인간을 위한 용도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신이 이용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다른 설은 인간이 이 계단을 오르면서 신에 대해 경건함을 표현할 수 있도록 두 손까지 모두 사용하여 엎드려 기어가는 자세로 오르도록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이야 어떻든 간에 정말 이 계단 앞에서는 인간은 절대 오만해질 수 없음이 확실하다. 이 계단들은 정말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아찔하다!


앙코르 사원의 중앙탑은 항상 동쪽을 바라보게 지어져 있다.
벽의 네 면에도 모두 문이 있는데 동쪽문만 뚫려 있고 나머지 세 문은 부조만 되어 있는 가짜 문이다.
캄보디아 인들은 동쪽을 생명과 창조, 새로운 시작, 남자의 용감성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한적한 박쎄이참끄롱. 앙코르 제국이 침략을 받아 왕이 적에게 잡힐 뻔 했을 때
큰 새가 나타나 날개를 펼쳐 왕을 보호했는데 그 새의 이름이 박쎄이 참끄롱이었다.

앙코르톰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남문으로 이동했다. 앙코르톰은 캄보디아 말로 '커다란 도시'라는 뜻이다. 방대했던 앙코르 제국의 마지막 수도로, 다른 유적들이 대부분 개별적인 사원 등인데 반해 이 곳은 성곽 안에 여러 유적이 모여있어 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앙코르 제국의 종교는 힌두교 - 神王사상 - 불교 - 다시 힌두교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이러한 변화를 겪으면서 유적에 표현된 불교 이미지들이 많이 손상되기도 했다.


길 양쪽에 보이는 석상이 힌두교의 창세 신화인 유해교반(乳海攪拌)을 형상화 한 것.
큰 뱀(나가)를 들고있는 신들과 악마들인데, 상당수 도난당해 대부분 복원품이고 그나마 이것마저도 상태가 별로 좋지 못하다.


얼굴의 주인공은 자야바르만 7세이자 동시에 자신과 동일시한 관세음보살.
이렇게 성벽에 입구를 내고 세운 탑이 앙코르 유적의 대표적 건축 기법인 고푸라 Gopura이다.

이 곳은 앙코르 유적지 중에서 유일하게 처음부터 불교 건축물로 지어진 곳이다. 성벽 안에는 왕을 비롯한 왕족, 고위층, 장군, 승려들이 생활했으며 일반인들은 성 밖에 살았다고 한다. 우리로 따지면 이 앙코르톰의 남문이 아마 남대문쯤 되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제 겨우 성문에 들어서는데 벌써부터 땀이 난다. 성문 안쪽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뚝뚝아저씨를 다시 만나 바욘으로 향했다.

바욘 사원은 가장 인상깊게 본 앙코르 유적이다. 앙코르 왓보다는 100년 정도 후에 지어졌다고 한다. 바욘의 규모는 장엄하고 구조 또한 훌륭하여 위엄이 가득하다. 그야말로 대제국을 건설했던 자야바르만 7세의 유적답다. 각 부분들은 대칭과 평행으로 균형잡혀 있다. 이 사원의 가장 큰 특징은 54개의 탑 - 현재는 36개만 남아있음 - 에 큰 얼굴 200여개가 사방으로 조각된 사면상이다.


바욘은 전체적으로 3개 층을 이루고 있다. 첫 층과 두번째 층은 벽에 부조가 조각된 회랑이 있고,
세번째 층은 16면의 십자형 구조에 둥근 모양의 중앙 사당이 있다.


회랑 안으로 들어가는 나. 난 뒷모습을 찍는 게 좋다. ^^;
저기 들어가서 뭘 했냐하면...


이 아줌마에게 딱 걸려서 $1 내고 얼떨결에 향을 샀다. -.-;
회랑 안에서 향을 팔면서 돈을 받는 캄보디아 아줌마

뚝뚝아저씨가 우리에게 입구를 잘못 설명해 주는 바람에 우리는 관광객들이 관람하는 반대 방향으로 돌게 되었다. --; 원래 바욘의 출입구 역시 동쪽이지만 지금은 성벽이 대부분 파손되어 어느 곳에서나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름대로 한적하게 다니긴 했으나 가뜩이나 내부 구조가 복잡한 데다가 엄청나게 방대한 조각들의 스토리를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웠다. 중간중간에 가이드를 대동하고 다니는 관광객들 근처에서 서성대며 부조의 의미를 슬쩍슬쩍 귀동냥 하기도 했다.


바욘을 둘러싸고 있는 벽은 양각 부조의 회랑으로 되어있다.

앙코르 유적에 있는 조각들은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매우 상반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우리는 여백의 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나 여기 벽에서는 도무지 여백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무늬들이 빼곡하다. 더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부지런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 법인데 어떻게 이 많은 조각을 이리 빼곡히 채웠을고...
고푸라의 앞 기둥에는 특유의 오묘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압살라들이 둘셋씩 짝을 이루어 춤을 추고 있는 조각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인간으로서 과연 저런 자세가 가능한 것인가. -.-;



차마 위의 자세는 못따라하고 그냥 옆에 뻘쭘히 서서 ^^;

내부회랑을 돌고 세번째 층으로 올라갔다. 관광가이드 책에서 많이 본 사면상이 가득한 곳, 바로 이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굉장히 붐볐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은 포토제닉 위치에서 사진을 찍느라고 줄을 서기도 했다. - 줄을 서서 같은 장소에서 번갈아 가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대개 한국사람, 중국사람이다. -


중앙 성소와 관세음보살 사면상이 있는 세번째 층.
태양의 위치에 따라 사면상의 그림자가 달라지기 때문에 얼굴 모양이 변하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앙코르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뱀 '나가'


이건 아까 내부회랑에서 찍은 사진. 분위기 있을 뻔 했는데 자세가 마음에 안든다.

앙코르 유적은 그 훼손 정도가 매우 심한 편이다. 하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번씩만 만져보고 한 번씩만 밟고 지나간다고 해도 엄청난 위협이다. 도대체 얼마나 큰 캄보디아의 보물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보물인데 후손들이 당장 먹고 살기에 바빠져서 관리는 고사하고 그냥 한꺼번에 뒤엉켜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앙코르 유적의 많은 부분이 각국의 단체의 지원으로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 독일, 프랑스, 일본에서 특히 활발한 지원이 있는 것 같았다. - 다시 외부 회랑의 모습.



길바닥에 그냥 널려져 있는 돌덩어리도 모두 유적이다.
자세히 보면 돌마다 번호가 다 매겨져 있는데 이것은 복원을 위한 것이다.


이 곳은 나라의 보물이자 관광객에게 인기 좋은 여행지이지만
이들에게는 일터이며 생계의 수단이자 쉼터이고 또 놀이터이다.

이제 겨우 11시도 안되었는데 벌써 땀으로 옷이 다 젖었다. 왠만해서는 땀을 잘 흘리지 않는 나도 심지어 팔다리에서 땀이 날 정도이니 완전히 자연 찜질방이 따로 없다. 그렇지만 한낮이 되면 더워서 돌아다니지 못한다고 하니 오전에 보기로 한 앙코르톰 내부는 다 봐야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발길을 옮겼다.

(계속..)




반응형

'걷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티벳 ④ - 둘루, 짜시델레  (3) 2007.09.19
티벳 ③ - 길 위에서  (7) 2007.09.14
티벳 ② - 無題  (5) 2007.09.12
티벳 ① - 내가 속해있지 않은 세상 속으로  (1) 2007.09.09
캄보디아 세번째 이야기  (0) 2007.04.22
통영  (1) 2006.09.15
캄보디아 두번째 이야기  (1) 2006.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