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영화] 비열한 거리

호랭Horang 2006. 6. 21.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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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우울하게 만들었는지. 회식이 끝나고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서 오락실에 가서 한시간 동안이나 오락을 하고 나서도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극장에 갔다. 왠지 오늘같은 기분에는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생각은 정확히 맞았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인간의 폭력성이 탄생하는 순간을 그렸다면, <비열한 거리>는 구체적이고 심화된 폭력을 묘사하는 유하 감독의 폭력시리즈 2탄이다. 삼류 조폭 병두(조인성)는 매일 매일 삶의 무게를 느끼면서 살아가는 비열한 - 그러나 너무나 인간적인 비열함을 가진 - 스물 아홉 청년이다. 병두는 "의리있는 건달"이라는 겉모습으로 식구들을 챙기지만 실상 그 내면 깊은 곳에는 치졸한 배신과 무자비한 응징을 기꺼이 실행할 수 있는 욕망을 품고있는,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모르고 있는, 어찌보면 애처로운 존재다. 그러나 병두의 모습이 마냥 비열해 보이지 않는 것은 그가 원하는 것을 얻는 동시에, 또 다른 비열한 친구(남궁민)로부터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모습으로 소비되기 때문이며, 또한 그도 완전한 조폭 사회의 일원이기 보다는 잔인한 조폭과 평범한 소시민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한 젊은, 아니 어린 남자일 뿐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편인지 아닌지 알 수 없고, 죽이지 않으면 죽게 되는 현실. 유하 감독은 이러한 현실의 아이러니를 병두의 눈빛 하나로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없이 비열했다가도 또 한없이 연민을 자극하는 조인성의 눈빛은 완벽하다. 조인성이 가진 이미지는 병두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자기가 이용당하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병두는 유치하지만 순진했다. 그리고 삶은 그렇게 어리석을만큼 순진한 인간에게는 보상하지 않는다. 아무도 믿어서는 안되고, 아무에게도 비밀을 말해서는 안되고, 아무에게도 의지해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비열하고 냉혹한 삶이란 말이다.

러닝타임이 무려 141분이나 되는 긴 영화였다. 그러나 나에겐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은 가슴아픈 영화.

  
감독 : 유하 (2006)
배우 : 조인성, 이보영, 천호진, 남궁민, 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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