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3분 짜장

호랭Horang 2006. 4. 30.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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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친구가 3분 짜장 이야기를 해서 생각이 났다.

1999년, 내가 외국 땅이라고는 맨처음 밟아본 캐나다에서의 그 처음 두려움과 설레임.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외국경험도 처음이니 일단 어딘가에 적을 두고 출발해보자는 생각에
나는 영어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것도 4개월이 지난 후에는 곧 용기백배하여 그만 두고 탱자탱자 했지만...^^)

어쨌든 첫날 수업시간에 나는 점심으로 한국에서 사간 3분 짜장을 가져갔다.
남들은 샌드위치 같은 것들을 싸오는데(일부 한국사람들은 직접 밥을 해서 도시락을 싸오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아직 장도 제대로 못봐서 재료도 없고 어떻게 싸는지도 모르고 해서, 아까운 비상식량을 하나 뜯은 거다.

밥에 3분 짜장을 붓고 줄을 서서 전자렌지에 3분 데웠다.
꺼내서 들고 조심조심 나오는데, 너무 뜨거워서 놓쳐버렸다. -.-;
바닥에 엎질러진 시커먼 짜장과 흰 쌀밥, 그리고 내동댕이쳐진 도시락.
나를 향해 쏟아지는 사람들의 눈길.
더욱 난감한 것은 복도에 카페트가 깔려있어서 카페트에 짜장얼룩이 다 지고 냄새가 진동...

믿거나 말거나 나는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어떻게 해야될지 전혀 모르겠고 눈 앞이 깜깜해서, 
또 오자마자 바보같은 짓을 했다는 생각에, 
또 짜장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또 첫날 점심부터 처량맞게 굶어야 하나 하는 생각 등등

그래도 그 때 나를 도와준 것은 거기 있던 한국 사람들. 
나랑 한번도 이야기 해본 적도 없고 그 날 난생 얼굴 처음보는 사람들이었는데
그 냄새 진동하고 시커멓게 얼룩져서 다들 째려보던 그 짜장을 
나랑 같이 휴지로 다 닦아 주었다.

Moon을 비롯한 많은 그 시절 친구들.
오늘 다시 새삼스레 고맙다는 생각이 듭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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