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제주도 걷기 ② - 무위재에서의 하루

호랭Horang 2009. 11. 1.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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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주변 경관을 보니 어젯밤 정말 천국이 따로 없다고 잠시 생각했던 것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이 곳은 무위재라는 펜션으로 중문에서 약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차들이 많은 해안도로변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통행량이 적은 남북을 가로지르는 도로 쪽으로 위치하고 있어 주변이 매우 조용하다. 무위재는 건축가 편승문씨라는 분이 직접 설계하고 지은 집이라고 한다. 왠지 펜션 이름과 외관에서 풍기는 냄새가 범상치는 않아보였다.

꽤나 내 맘에 들었던, 방만큼 큼직한 테라스

테라스에서 밖을 보면 이렇게 뻥~ 트여있다



지금 운영하고 계시는 사장님은 멋지고 인상 좋으시고 게다가 마음까지 좋으신 화가이신데, CJ부부와 마찬가지로 제주도가 좋아 서울을 털고 무작정 제주로 내려온지 얼마 되지 않은 제주 초보이시다. 역시 제주도엔 사람들을 끄는 매력이 있나보다.

날이 좋아 마라도로 가는 배가 정상운행 한다는 소식이다. 바람이 강한 날은 배가 뜨지 못한다고 하니, 마라도에 가실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배편은 미리미리 챙겨보는 것을 추천한다.

환상적인 날씨


오후에는 마라도에 가기로 하고 오전에 감깐 걸을 요량으로 펜션 근처에 있는 10코스 대평포구로 갔다. 친절한 택시 운전기사를 만났는데, 아저씨도 대평포구 올레길 시작점에 처음 가 보신다고 하여 골목을 조금 헤맸다. (택시 요금은 깎아주셨다. 친절하시기도 하지.) 제주도에 세번 정도 다녀갔던 것 같은데,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것은 처음이다. 버스는 한 시간에 몇 대 밖에 다니지 않는 구간도 많기 때문에 아직은 많이 불편하다. 올레가 더 활성화 되려면 적어도 시작점과 끝점에서 만큼은 대중교통이 잘 연계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택시 기사분들이며 길에서 만나는 많은 주민, 여행객 분들이 올레 때문에 왔냐며 친구인양 반갑게 인사해 주신다. 하~ 올레가 유명하긴 유명한가보구나...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도 왠지 낯설지가 않게 느껴지는 것이 '올레'라는 단어 하나가 가진 힘인가 하는 생각을 하니 신기하다.

제주도 풍경


구경만 하고 돌아온 박수절벽


어제 첫날인데 땡볕에 너무 무리하여 걸었더니 오늘은 슬슬 꾀가 난다. 오후에 마라도도 가야하니 어차피 너무 멀리가면 안돼, 라고 생각하고 박수절벽까지만 잠깐 걸었다. 박수절벽... 뭐 올라가보면 더욱 좋겠으나 이번만 기회는 아니지, 도저히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아 건너뛰고 근처에 있는 화순 해수욕장으로 가기로 했다. 제주도까지 왔는데 해수욕장은 한번 가주어야지... 도착하자마자 발을 담갔다. 좀 걸어보겠다고 큰 맘 먹고 장만한 등산화, 올레길에선 좋지만 역시 바닷가에선 영 아니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바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9월, 그것도 평일 해수욕장이라 그런지 해수욕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아니 노닥거리고 있는 사람조차 하나도 없어 나혼자 덩그러니 발 담그고 놀았다.

정말 물이 맑다




등산화를 신고다녔더니 좀 더워서 ^^;


잠시 후 해수욕장으로 데리러 온 CJ 부부와 함께 마라도에 가기 위해 모슬포 선착장으로 향했다. 늦을 뻔 했으나 역시 코리안타임! 배가 정시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어서 다행히도 늦지 않게 뱃시간에 댈 수 있었다.
마라도는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으로 한두시간이면 걸어서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섬이다. 한번쯤은 가볼만한 아기자기한 섬이라 하겠다. 모슬포에서 15분 정도만 배를 타고 들어가면 되니 힘들지 않게 갈 수 있다.

종교의 자유가 넘치는(?) 마라도. 이 작은 섬에는 교회, 성당, 절이 모두 있다 ^^ 마라도 성당

 

시원한 바닷바람




햇빛을 피할 그늘이 없는 관계로 카트를 빌려타고 섬을 돌기로 했다. 햇살이 너무 뜨겁지 않은 날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도 좋을 듯 하다. - 모슬포항에서 자전거는 배에 잘 실어주려하지 않으나, 우리는 접는 자전거를 가져가서 운송료를 조금 냈더니 마지못해(!) 태워주었다. -

최남단에 있다는 점 때문에 유명하기도 하지만 정말 마라도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아마도 "짜장면 시키신 분~"이란 광고가 아니었나 싶다. 이 조그만 마라도에는 짜장면 집이 무려 4개나 있는데, 음식점들이 늘 그렇듯 서로 원조라며 특허까지 있다고 주장하면서 영업을 하고 있다. 메뉴는 짜장면 한가지 뿐인데, 톳을 얹어 육지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 그러나 분명히 "독특함이 있다"고 말했지, 맛있다고 말하진 않았다. -.-;


짜장면 먹고 다시 섬을 한바퀴 천천히 돌아본다. 

바다 색깔이 너무 예뻐서 풍덩 빠지고 싶다


마라도에 있는 유일한 절 기원정사. 기와에 적혀있는 사람들의 희망을 보니, 나는 무슨 희망을 안고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를 위해서든, 무엇을 위해서든 기도한 적 있었던가. 아주 오래된 것 같다.


진짜 못생겼다(클릭하면 커집니다)

자꾸보니 귀엽다(클릭하면 커집니다)



강태공이 따로 없다


마음 편해지는 짙은 바다색

물이 너무 맑아 바닥이 다 보일 정도!



두시간 정도 섬을 산책하고 나서 오후엔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 미술관으로 향했다. 얼짱화가 이중섭이 약 1년간 서귀포에서 살았던 인연으로 서귀포에서는 이중섭 미술관을 지어서 작품유치를 추진하는 모양이다.

이중섭의 "황소"

현재 이 곳에 전시되어 있는 그의 작품은 거의 복제품들이다. 나처럼 까막눈에게는 진품이건 복제품이건 의미가 없으니, 이럴 땐 그냥 아무 생각없이 작품을 보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좋다. ^^ 

사실 작품보다 더 내 맘에 든 건 일본에 두고 온 아내와 아들들을 그리워하면서 아내와 주고 받은 편지들이었다. 남의 연애편지를 훔쳐보는 것, 그것도 일본어로 되어있어 모두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묘한 느낌에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빽빽히 쓰여진 편지와 여백에 그린 크고 작은 그림들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예술가라서 그런지 아니면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해서 그런지, 옛날 아저씨답지 않은 다정하고 솔직한 표현들이 무척 따뜻하다. 미술관 옆에는 그가 1년동안 살았던 집이 보존되어 그의 궁핍했던 삶을 엿볼 수 있다.

점심을 짜장면으로 때웠더니 슬슬 배도 고파져 저녁을 먹으러 서귀포에 있는 수희식당으로 갔다. 역시 강력 추천코스 중 하나! 고등어구이, 성게국, 오분재기 뚝배기, 한치물회 등 다양한 메뉴를 맛보았는데, 하나같이 어쩌면 이렇게 맛있을 수가! 가격 대비 만족도 최고다. 언니의 말로는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범상찮은 포스가 느껴졌다고 한다. ㅋㅋ

낮에 마라도에서 너무 심하게 타버려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오이를 샀다. 다같이 오이를 썰어 붙이고 누워있어야만 했다. 이렇게 둘째날이 갔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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