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제주도 걷기 ① - 올레길 옵디가. 놀당갑서.

호랭Horang 2009. 10. 18.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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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8~12 늦은 여름휴가. 제주도에서.

11:40 제주공항 도착.

1코스 시작점인 시흥으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탄다


달라진 제주공항의 풍경. 배낭을 짊어빚고 등산화를 신은 올레꾼들이 많이 보인다. 덕분에 처음 타는 시외버스인데도 긴장이 되지 않고, 적당히 따라내리면 되겠거니~ 맘이 편하다. 

실은 요즘 운동을 너무 안해서 이렇게 갑자기 걷는 것은 무리일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올레가 "치유의 길"이라지만 잘못하면 치유가 아니라 병만 얻어 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원래 나의 로망이었던 네팔에 가고 싶었던 마음을 그냥 접어버리기는 너무 아까워서 좀 무리를 해서라도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네팔 안나푸르나 트랙킹을 하려면 최소한 일주일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같이 일주일 이상 휴가내는 게 어려운 직장인에게는 쉽지 않은 일정이다. 그리고 준비도 하나도 못했기 때문에 트랙킹 하다가 죽을지도 모르고... ^^;

1코스 시작.
그늘이 별로 없는데 내리쬐는 햇볕에 짐까지 다 짊어지고 다니려니 절로 땀이 뻘뻘 난다. 의사 선생님이 무리하지 말라고 했는데 - 실은 최근 몇 달째 오른팔이 안올라간다. 오십견은 아닌 것 같다. (ㅡ,.ㅡ) -  오른쪽 어깨가 아무래도 작살난 것 같다. 지난 주에 열심히 침맞은 것은 도루아미타불.

출발점에서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걷고 있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나이가 지긋한 중년 부부, 아이를 데려온 젊은 가족, 아주머니 무리들(가장 잘 걸으신다!), 그리고 혼자 걷는 사람들.

막상 오름에 올라보니 너무 기분이 좋다. 올레길에서는 사람이 우선이다. 올레길에서 나의 발걸음을 멈추도록 막는 것은 난폭하게 씽씽 달리는 차도, 빨간 신호등도 아닌 말과 소!  구불구불 불편하여도 들바람 갯바람에 그을리며 흔들리며, 흙냄새 사람냄새 폴폴 나는 올레길. 마음 편하게 끊임없이 걸을 수 있는 곳,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올레로 올레로 찾아오는가 보다. 마음이 잘 맞는 좋은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면서, 풀냄새 바다냄새 그리고 가끔은 소똥말똥 냄새도 맡으면서 천천히 올레를 걸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여기서 잠깐! 1코스 소개를 하고 넘어가겠음.

1코스 시흥~광치기 올레
제주올레 길 가운데 가장 먼저 열린 길로서 오름과 바다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오름 바당 올레'다. 작고 아담한 시골 초등학교인 시흥초등학교에서 출발해 말미오름과 알오름에 오르면, 성산 일출봉과 우도, 거북이 등껍질처럼 다닥다닥 붙은 들판과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종달리 소금밭을 거쳐 시흥리 해안도로를 지나면 다시 또 성산 일출봉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수마포 해변에 닿는다. 길이 끝나는 광치기 해변의 물빛도 환상적이다.
- 제주걷기여행 Guidebook 中 -

 
<1박2일>에 올레길이 등장하고, 신종플루까지 겹쳐 해외여행 대신 국내에서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져 올여름 제주도는 관광객으로 대박이 났다고 한다. 좋은 곳을 여행하다보면 숨겨놓고 나만 보고 싶은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하는데, 제주도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와서 느낄 수 있는 유명한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올레의 탄생 자체가 "행복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길"로 출발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씨의 <제주 걷기여행>이라는 책에 보면 그녀가 올레길을 만들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한 순례자와의 대화가 나온다. 그녀가 800km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한 영국여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 길에서 누린 위안과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줘야만 한다.
당신은 당신 나라로 돌아가서 당신의 길을 만들어라. 나는 나의 길을 만들테니.

  

힘들고 지친 당신에게 바치는 길


걷다보니 왜 말은 제주로 보내라고 하는 옛말이 있었는지 알 것 같다. 그야말로 말 팔자가 상팔자다.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마시고 이렇게 좋은 풍경을 보며 풀을 뜯고 있는 그 한가로운 모습이란! 
(왼쪽은 소. 올레코스는 목장을 관통하기 때문에 똥천지임. 걸을 때 똥 밟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


그렇다고 올레길이 조용하고 진지하기만 한 길은 아니다. 너무 진지하기만 한 것은 No thank you 인 내가 올레길을 좋아하는 건 그 길에는 숨바꼭질과 같은 재미와 유머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 보물찾기의 비밀은 올레꾼들에게 길을 알려주는 파란색 화살표이다. 정방향 코스는 바다를 상징하는 파란색 화살표가 안내하고 있고, 역방향은 제주의 또다른 상징인 귤의 색깔을 따 금색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다. 또 가끔은 화살표가 아니라 나뭇가지에 걸린 파랗고 노란 리본이기도 하다. 






중간에 나처럼 혼자 여행온 길동무를 만나 - 왜 혼자 여행온 사람은 다 여자인거냐 (--;) - 알오름에서 "시흥 해녀의 집"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함께 걸었다.
해녀의 집에서 그 유명하다는 전복죽을 먹고 나니 완전 퍼져버려서 짐을 들쳐메고 움직이기가 싫어졌다. 여행다닐 때 짐을 많이 들고 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정말 최소한의 짐만 싸갖고 다니는데, 그래도 짐은 짐인지라 하루종일 메고 다니는 것은 정말 곤욕이다. 더구나 멋진 풍경 좀 찍어보겠다고 마운트한 광각렌즈... 던져버리고 싶었다!

결국 1코스의 끝 약 1km를 남겨둔 성산에서 철수하기로 맘을 먹는다. 에이~ 13km 걸었으면 거의 다 걸은 거나 마찬가지야, 라고 대충 멋대로 생각해버린다. -.-; 
성산에서 버스를 타고 CJ언니 부부를 만나러 간다. 이 부부는 세상에서 제일 팔자 좋은 커플로, 마침 지난 주 토요일날 제주도로 이사를 하여 주변의 놀라움과 부러움을 사고 있다. (실은 이사라기 보다는 제주에서 몇 개월 살아보기로 했다는)

펜션에 도착하여 드디어(!) 짐을 내려놓고, 흑돼지, 새우, 전복 등 온갖 싱싱한 것들을 바베큐 해 먹으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더라... 천국과 같은 이 펜션의 사진은 내일 올리기로 한다.

알오름으로 향하는 길(아니.. 내려오는 길이었던가?)


시흥리 해안도로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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