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일본 나오시마 - 그 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호랭Horang 2014. 7. 2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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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을 보러 섬까지 온다?

 

언젠가 잡지에서 나오시마(直島)의 소개를 보고, 막연히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 그렇지만 미용실에 있던 잡지라서 제 맘대로 찢어 가질 수도 없고 해서 섬의 이름만 기억해두고 넘어갔습니다. - 이번에 히로시마현과 오카야마현을 다녀오면서 마침 근처에 있는 나오시마를 발견, 반가운 마음에 하루를 할애하여 일정에 추가했습니다.

이렇게 곁다리로 들어간 나오시마는 새롭고 즐거운 보물로 가득찬 섬이었습니다. 예술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분들이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됩니다.
 


자, 나오시마로 출발!
 
 

나오시마는 어디?

 

나오시마는 행정구역 상으로는 시코쿠(四国, 일본의 큰 네 개의 섬 중 본토의 바로 남쪽에 있는 섬)의 카가와현에 속해 있는 섬입니다. 그러나 거리 상으로는 카가와현보다는 혼슈(本州, 본토)의 오카야마현에 더 가까이 있습니다. 인구 약 3천4백명, 섬 둘레가 약 16km(면적 7.80㎢)의 작은 섬입니다.

 

 

오카야마현의 JR우노역에 내려서 우노항(宇野港)에서 배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나오시마의 미야노우라항(宮之浦港)에 도착합니다. 배는 대형 관광버스도 이동이 가능한 카페리입니다. 카가와현의 타카마츠항에서는 배로 50분 정도 소요됩니다.

 

JR우노역. 동화에 나오는 집처럼 아기자기하다.

 

나오시마를 여행하는 방법

 

섬의 북부에는 미쓰비시 제련소가 있으며, 중앙부에는 각종 교육시설이 들어선 교육지구가 있습니다. 남부에는 미술관, 캠프장이 있는 베넷세 나오시마 문화마을과 혼무라 등이 자리잡고 있어 관광객들은 주로 문화예술작품이 집중되어 있는 남부를 중심으로 섬을 돌게 됩니다.

 

섬을 여행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작은 섬이라도 해도 일단 걸어서 일주하는 것은 다소 무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 경우, 옆의 지도에서 보이는 치추미술관과 베넷세 하우스 사이를 걸어서 이동하는데만 20~30분 정도 걸렸습니다.(참고로 저는 걸음 빠른 편) 게다가 날씨가 덥고 언덕이 많아 걷는 것은 만만치 않습니다.


섬의 주요 포인트를 돌아다니는 시내버스가 있습니다. (100엔/1회 탑승) 섬 안내 지도에는 정류장 이름과 버스 운행시간이 상세히 적혀있고, 버스기사가 정류장 안내도 꼭꼭 잘해주는 편이므로 내릴 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렌트카를 이용하셔도 좋습니다만, 반대편에서 오는 차와 서로 비켜 다녀야 할 정도로 길이 좁은 편임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그 밖에 섬의 곳곳에서 자전거를 대여해주니 날씨가 맑다면 자전거로 일주를 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또한 베넷세 하우스에서 숙박을 하게 된다면 전용 미니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1박에 50만원을 초과하는 숙박비의 압박이...
 
공업의 마을에서 예술의 마을로

섬의 주요 산업은 전통적으로 어업이었습니다. 그러나 농어업의 부진으로 재정난이 심각해지자 나오시마는 미쓰비시의 제련소를 수용하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당시 미쓰비시는 제련시 발생되는 유독가스 문제로 고심하던 차, 공해의 걱정이 상대적으로 적은 낙도를 찾은 끝에 나오시마에 제련소 건설을 타진하게 된 것입니다. 1917년, 섬의 북단에서 미쯔비시 합자회사의 제련소 조업이 개시되면서 낙후된 섬마을이었던 나오시마는 산업의 마을로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던 가운데 근처의 토시마에서 발생한 산업 폐기물의 불법투기 문제가 불거지면서, 산업 폐기물 중간처리 시설을 보유하고 있던 나오시마도 산업 폐기물로 인한 오염 문제, 그리고 제련소에서 발생하는 연기의 피해로 인한 섬 자연환경 파괴 등 공해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섬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기업가의 개인적인 열정이 나오시마를 다시 살려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피폐해져가던 섬 자체를 예술의 마을로 변화시켰습니다. 폐허가 되다시피한 집들을 리모델링하여 떠난 사람들도 돌아오게 하고, 관광객들도 끌어들이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나오시마에 반해 나오시마로 살러 들어간 외지인마저 생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섬을 방문했던 날도 평일 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관광객이 많았습니다.
 

나오시마, 보물의 섬이 되다 - 그 섬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아주는 것은 미야노우라항의 붉은 호박입니다.

 

문구·학습지 관련 회사인 후쿠다케(福武) 서점 창업주의 아들인 후쿠다케 소이치로회장은 1987년 이 일대의 토지를 구입하고 섬을 문화적인 장소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회사 이름을 베넷세로 변경하고, 역시 문화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선친의 뜻을 받들어 나오시마에 어린이 캠프장을 만드는 데 착수했습니다. 세계적인 일본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감수를 맡았고, 1989년 국제캠프장이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후쿠다케 회장은 현대미술과 자연, 그리고 역사가 함께 어우러진 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 안도 타다오에게 이 섬을 세계 최고의 문화예술의 섬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작품 한 점, 건축물 한 채가 아닌 섬 전체의 마스터플랜을 그에게 맡긴 것입니다. 사람과 자연과 문화를 이어주는 나오시마 건설을 위한 「나오시마 문화마을 구상」은 1992년에 호텔·미술관 등 「베넷세 하우스」건설 등으로 확대됩니다.


바닷가와 길에는 군데군데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놓여 있습니다. 이전부터의 기업 콜렉션인 미술품도 많지만, 초기부터 확실한 목표를 갖고 구상하게 되니 자연히 베넷세 하우스의 구조나 경관 등을 감안해 오직 나오시마만을 위해 제작되고 설치된 작품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미술관 자체가 작품, 치츄(地中)미술관

 

미술관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것으로, 지하에 있으면서도 자연광을 채용해 시간에 의해서 빛에 따라 작품의 느낌이 변화하는 것이 매력입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미술관도 그 자체가 예술작품이라 하여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짐은 아예 티켓 판매소(아래 사진)에 맡기고 가야 합니다. 아쉬운 마음에 사진이 뚜렷하진 않습니다만 팜플렛을 스캔해 봤습니다.

 
의외로 전시 작품은 8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클로드 모네, 월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 등 유명 작가 3명의 작품을 본인들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면서 설치한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모네의 수련을 가장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이 곳, 치츄미술관이라고 합니다. 후쿠다케 회장은 모네의 수련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지녔다고 하는군요.


 

미술관으로 걸어가는 길목에는 예쁜 꽃과 풀, 나무, 그리고 물로 꾸며져 있는 정원이 있습니다. 역시 모네가 사랑했던 색깔과 물들로 꾸민 정원이라고 합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나오는 티켓 판매소. 각종 주의사항을 안내받는다.
(홈페이지 http://www.chichu.jp/)
 

한 번 정도는 묵어보고 싶은 곳, 베넷세 하우스

 

나오시마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한 베넷세 하우스에는 호텔, 뮤지엄, 레스토랑, 야외 갤러리 등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호텔의 숙박비는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매우 비싼 편이지만 현대적인 감각의 건물에서 멋진 바다와 어우러져 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투숙객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있다는 게 은근히 부러워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넷세 하우스로 이동하는 길. 멀리 치츄미술관이 보인다(파란 화살표)
(홈페이지 http://www.naoshima-is.co.jp/)
 

보물찾기를 하다, 이에(家) 프로젝트

 

이에 프로젝트는 나오시마에서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하면서 빈집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이용하여 시작한 작업이라고 합니다.

 

혼무라(本村) 지구는 나오시마 내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입니다. 낡은 집과 그 집들을 지키고 있는 노인들의 마을이었습니다. 혼무라 지역의 오래된 집들을 재생·개조해, 안도 타다오가 프로듀싱하고 유명 작가들이 작품화한 프로젝트로 현재 6개가 공개 중입니다. 폐허에 가까웠던 낡은 주택들과 신사, 유적지 등이 문화 예술의 옷을 입으며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왼쪽 지도에 표시된 빨간 점이 그것들로, 지도를 보면서 골목골목 숨어있는 6개의 집을 찾아가는 것.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골목을 기웃거리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나오시마의 아트 사이트는 부를 축적한 한 개인 사업가가 친환경적인 아트 빌리지를 만들어 기울어져 가던 섬을 살려낸 사례입니다. 그러다보니 이 프로젝트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평범한 섬을 예술의 명소로 탈바꿈 시키기 위한 노력이 구석구석 베어 있습니다. 또한 그 노력이 국가가 아닌 개인 주도하의 섬 리모델링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뜻에 유명 예술가들이 대거 동참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인 안도 타다오를 내세워 완성한 치츄미술관과 베넷세 하우스. 더우기 그는 체계적인 건축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그 특이한 이력으로 긍정적인 의미이던, 부정적인 의미이던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처음 후쿠다케 회장에게 의뢰를 받았을 때 안도 타다오는 반신반의했다고 합니다. 당시 나오시마는 제련소에서 배출하는 유독 가스로 마을이 황폐해지고, 사람들은 섬을 떠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화로 이 섬을 일으켜 보겠다는 후쿠다케 회장의 결의와 끝없는 설득에 마음을 굳게 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있던 사람들마저도 떠나가던 한 작은 섬이,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고 나서 연간 35만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게 되어 이제는 오히려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나오시마는 국내의 여행 잡지보다 오히려 구미 등의 고급 리조트 호텔 잡지에서 다루어지는 사례가 많아 외국인 관광객들도 부쩍 증가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장소의 입장료도 만만치 않게 비싼 편입니다만(치츄 2000엔, 베넷세 하우스 1000엔, 이에 프로젝트 1000엔 등) 애써서 일부러 이 작은 섬까지 왔는데 입장료가 비싸다고 안들어가는 관광객은 많지 않겠지요.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성공 비결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주민의 참여입니다.

초기에는 미술관 프로젝트 등에 대한 주민의 관심도가 매우 낮았습니다. 그러나 섬 전체를 사용한 현대 미술전, 낡은 민가를 매입해 문화예술 공간으로 보존·재생시키는 이에 프로젝트 등을 거듭하며 서서히 활동이 주민들의 이해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에 프로젝트에서는 주민 125명의 공모를 통해 주민이 작품의 설치에 직접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현대 예술이라고 하는 이질적인 것이 보수적인 늙은 섬에 정착되는 것에 대한 주민의 반감을 줄였습니다.


이제는 예술의 섬으로 다시 태어난 삶의 터전 나오시마에 대한 주민들의 자부심도 높아졌습니다. 혼무라에서는 길을 가는 주민들이 보물찾기를 도와줍니다. 방향을 안내해주면서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합니다. 골목골목이 살아있는 문화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나오시마는 이제 명실상부한 예술의 마을로 거듭났습니다.
 

섬을 나오며...

 

나오시마 프로젝트가 한 개인의 순수한 예술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한 것인지, 아니면 철저히 계산된 관광 자원의 개발 계획으로 시작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본래의 의도가 어떤 것이었던 간에 죽어가던 섬을 살리고, 사람과 자연을 연결해주는 문화를 이야기하고, 더 나은 삶을 찾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나오시마와 그 나오시마를 만들 생각을 했던 후쿠타케와 베넷세, 그의 열정을 뒷받침한 예술가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해한 일본인들의 문화에 대한 의식이 유난히 부러운 하루였습니다. 

(참고자료 : 위키피디아, 네이버, 인터뷰)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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