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부정도 못한, 그러나 인정도 못한, 그래서 모냥빠진 곽노현씨

호랭Horang 2010. 6. 1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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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정치적인 이슈는 가능하면 다루지 않으려고 했으나, 곽노현 때문에 한 마디 해야겠다. (나는 서울시민 아니지만 원래 옆집 뒷담화가 더 재밌잖아요~)

곽노현씨가 외고 등 특목고를 없애겠다고 했는지, 증설을 더 이상 막겠다고 했는지, 개혁을 해야겠다고 말을 했는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외고가 뭔가 오작동 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한편 그 오작동에 올라타고 오작동의 결과를 적극적으로 누리고 있다.

게다가 이 점에 대한 곽노현씨의 해명, "당시엔 잘 몰랐다"라는 발언은 그냥 너무 웃겨 갑자기 효리가 될 것 같다. 너의 말이 나는나는 우낀다~  

여기에 진보세력의 딜레마가 있다.
사회 구조의 개혁. 아름답고 숭고하다는 거, 잘 알겠다. 그러나 정작 본인들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말과 다른 그 행동들에, 이율배반적인 모습에 기가 찬다. 자신은 기존의 기득권이 누리는 것을 다 누리면서 "이건 나쁜 거야~ 보수꼴통들이 많이 하는거야~ 난 한번 해봤지만 넌 그러면 안돼~" 라고 하는 거는 좀 모냥이 많이 빠지지 않냐...

만약 있는대로 말하면 어땠을까. 인정하고 고백해 버린다면? 이건 사상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니 하기 쉽진 않겠다. 외고가 기득권에 봉사함을 알면서도 자기 자식은 외고에 보낸 겉과 속이 다른 치사한 인물로 낙인찍히는 셈이 되겠고, 이와 관련된 그의 정책이나 주장은 힘을 잃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의 노선마저도 지키기 어렵게 되겠다. 따라서 이건 취할 수 있었던 선택은 아닌듯.

그렇다면 그로서 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선택은? 겉과 속이 다른 몇몇 뻔뻔한 인사들이 하는 것처럼 끝까지 우기며 나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태도라는 옵션이 있겠다. 토는 좀 나오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토를 하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건 정말, 이거야말로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부정도 못한, 그러나 인정도 못한, 그래서 모양 빠져버린 곽노현씨는 어떻게 보면 양심적이고 덜 때묻고 좀 더 순수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뻔뻔할 수 없어 부정도 못하고, 배신할 수 없어 인정도 못한 것이 아니었을지. 나는 그의 인품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인간적으로는 오히려 이해도 간다.

이왕 까이고 욕먹었으니, 욕먹은 거 억울할만큼 원래의 생각대로 제대로 개혁하길 바란다. 특목고가 본래의 설립취지를 버리고 명문대 진학을 위한 학원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 백번 지당하신 말씀이다. 또 모르지, 본인의 자녀가 다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관심을 갖고 바람직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 객관적이기 쉽진 않겠으나. 

그러나 내가 진짜 말하고 싶은 건 개혁을 하고 안하고가 아니라 바로 이거다. 
우리, 제발 좀 멋지게 폼나게 살 수 없을까. 얼마 못가서 민망해질 일 눈가리고 아웅 하지말고, 지키지 못할 거 같으면 잘난 척 고결한 척 말고, 제 마누라와 자식이 그런거고 전 몰랐어요 이런 구차한 말 하지말고, 쿨하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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