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나도 당신이 틀렸기를 바란다

호랭Horang 2006. 6. 6.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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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제가 틀렸기를 바란다. 원하는 것은 천성산에 아무 피해 없이 (고속철도가) 건설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분들이 옳기를 바란다. 판결을 내린 법원이 옳기를 바란다. 오늘 소송에 대해 대법원에서 결정을 했지만, 천성산 문제는 1년 뒤에도 아니 10년이고 20년이고 우리 후손들에게도 천성산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말을 할 것이다."

승려 지율의 '도룡뇽 소송'에 대해 6월 2일 대법원이 재항고 기각 결정을 하고 나서 지율이 밝힌 소감이다. 지율의 소위 천성산 지킴이 운동은 이기주의의 한 형태인 님비(NIMBY)가 숭고한 자연사랑 환경운동으로 화한 어이없는 해프닝이 아닐까하는 개인적인 견해를 조심스럽게 밝힌다. 우선 이번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지율이 천성산을 지키고자 하는 진의가 무엇인가이고, 두번째는 지율의 시위에 대응하는 정부의 자세는 어떠한가이다.

내 산은 안되고 남의 산은 된다?
지율은 천성산을 분명히 사랑하는 것 같다. 100일을 단식하고 목숨이 끊어질 위기에까지 처했던 그녀, 얼마나 천성산에 대한 애정이 깊고 남다르면 그러했을까. 그러나 이것은 그녀가 주장하는 "자연으로서의" 천성산이 아니라, 자신이 속해있는 내원사라는 절이 위치하고 있는 "밥그릇으로서의" 천성산을 사랑하는 것 같다는 의심이 생김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천성산을 가장 많이 파괴한 주범은 내원사가 아닌가 싶다. 원론적인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산이고 절이 들어서는 것 자체가 우선 그 산을 파괴하는 일이다. 조용한 곳에서 수양을 하겠다는 종교활동에 대해서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러나 산좋고 물좋은 곳에 들어서는 사찰, 암자 그 자체가 환경을 생각했다면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이야기인가. 게다가 그 산이 언제부터 절의 재산이 되었기에 열쇠로 걸어잠그고 쇠창살 쳐놓고 (국립공원 입장료와는 별개로) 사찰 관람료까지 받아가며 자연을 독점하는 어이없는 행태가 자행되고 있다는 말인가. 불자들에게는 숭고하고 신실한 종교생활을 위한 장소이겠지만, 이 정도되면 사찰을 도대체 어떤 의미로 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게 된다. 도롱뇽이 고속철도 공사 때문에 사라진 것이 맞기는 맞을까? 내원사의 행태 때문에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보란듯이 파헤쳐져 사찰로 이어지는 임도(林道)는 또 어떤가. 직접 가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사진을 보면 내원사에서 노전암으로 이어지는 길만 보더라도 아스팔트 신작대로 수준이다. 고즈넉한 암자는 주말이 되면 차량으로 신도들을 실어나르기에 정신이 없다. 한 아름이나 되는 나무들을 뎅겅뎅겅 잘라내고 그 자리에 만든 주차장 하며, 신작로 근처에 위치한 식당들이며 가게들 하며... 이쯤 되면 내원사에서 이러한 일련의 무지막지한 일들을 진행할 때 산감(山監)이라는 지율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습지를 관통하는 시멘트 도로 만들기에 진작부터 바빴던 내원사가 아니던가. 굽이굽이 걸어걸어 들어가는 조용한 암자에서 기거하는 스님이라면 또 모를까, 천성산을 제일 괴롭히고 있는 절에서 수양을 하신다는 천성산 지킴이라는 분이 주장하고 있는 저 교과서 같은 말씀은 도무지 머릿속에고 가슴속에고 전혀 흡수되질 않는다.
숲이 도로 건설로 몸살을 겪을 때 임도의 가장 큰 수혜자는 그 임도로 신도들과 물건들을 날랐던 내원사였다. 따라서 이번 지율의 소송 사건은 아름다운 천성산을 잃기 싫다는 한 깨어있는 국민으로서의 주장이 아니라, 내 마당인 천성산을 빼앗기기 싫다는 한 이기적인 단체를 대변하는 - 또는 그 단체에게 어쩌면 이용당했을지도 모르는 - 개인으로서의 주장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만약 지율이 사리사욕에 연연하지 않고 불심 하나로 이 모든 고통을 이겨내며 투쟁했다면 그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우리 사회가 존경해 마지않는 선각자로, 선생님으로 길이길이 모셔야 할 일이다. '지율 = 내원사'는 물론 아니며, 지율이 내원사의 그러한 행위들을 손수 계획하거나 적극 찬성했으리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율은 내원사의 자연파괴에 대해서 자신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어떻게 대응했었는지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하거나 해명하지 않았다.
결국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를 통해 지율과 그녀를 지지하는 환경단체가 원하는 것은 노선 전면 재검토나 우회도로 건설이다. 그러나 사패산으로 우회도로를 뚫을 경우에 야기될 수 있는 또 다른 자연 환경 파괴에 대해서는 검토해 보고 주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단 천성산은 피하고 보자, 다른 것은 또 그 때가서 검토하고, 라는 생각은 혹시 아닌지.

배째고 협박하라, 그러면 일단 들어줄 터이니
지율의 100일 단식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다. 지율스님을 살려내라며 안타까움에 절규했던 사람들도 있었고, 또한 일부에서는 100일 단식은 불가능하다면서 핫브레이크를 먹었느니, 마신 물이 포도당이었다느니 하는 여러가지 설로 그녀의 단식을 쇼로 규정하고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진위 여부를 떠나 일단 목숨을 걸고 진행한 시위는 지율로서는 절대적으로 쉬운 선택은 아니었고 쉬운 실행도 아니었을 것이다. 20Kg의 몸무게를 힘겹게 지탱하면서 죽어가는 그녀를 볼 때 나도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런 감정적인 문제를 차지하고서 정부는 그렇게 대응해서는 안되지 않았을까. 우선 노무현 대통령이 공약으로 전면 재검토를 내세웠다가 공약을 파기한 건부터 거슬러 올라가보자. 공약은 헛소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단순한 인기몰이식 공약을 내걸기에 앞서 실현가능한 것인지,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공약을 파기할 수도 있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가 있다던지 실행이 어려운 여러가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을 경우 파기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대통령이 자신의 공약을 100% 이행했던 것은 아니므로, 그 점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 불거진 갈등에 대해 정부가 대처한 방식이 '무원칙'에 기반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정확한 숫자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는 공사중단으로 인해 입은 피해 액수가 2조원이 넘는다고 주장한다. 비단 세금의 규모가 아니더라손 치더라도 논란으로 인해 우리가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 컸다. 대형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에 대한 정부의 미숙한 대응에 큰 책임이 있다. 배째고 나죽소, 하면 일단 무릎꿇고 말리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인가. 물론 이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리고 사람과 조직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늘 불거져 나왔지만, 늘 해결은 막막했던 고질적인 문제였다. 그렇다고 해서 매번 달래고 얼러서 급한 불을 끈 다음 시간을 끌며 정책을 중단했다가 법원의 판결에 의존할 것인가. 그 과정에서 생기는 엄청난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남는다. 갈등 해결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이나 원칙이 필요하다.


자연환경 파괴는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큰 악영향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한 번 파괴된 자연을 복구하는 데는 엄청난 대가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무엇이 인간을 위하는 길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므로 지율이나 환경단체에서 내거는 "주장"과 같은 지당하신 말씀에 대해 더욱 귀기울이고 심사숙고하고 자성해야 한다.
이와는 별개로 지율은 사람들에 의해, 언론에 의해 환경을 수호하는 투사와 같은 위치로 밀어올려져 버렸다. 물론 지율 자신도 처음 자신이 그 일을 시작했을 때보다는 -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므로 - 좀 더 사명감이나 공명심에 불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원칙이 없는 정부에 원칙없이 대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율의 숭고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숭고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커보이는 '도롱뇽 사랑' 싸움에 결과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우리 하나하나, 그리고 거기에는 바로 나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못된 성미에 흥분하여 꾸짖게 됨을 이해하길 바란다. 지율스님, 당신의 천성산 사랑은 눈물나도록 힘겨웠을 것이고 가슴아팠을 것이고 목숨과도 바꿀 정도로 중요했을 것이길 바란다. 그리고 결국 나도 제발 당신이 틀렸기를 바란다.


※ 전적으로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힌다. 또한 나도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절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고, 특정 종교자체에 대해 악의를 품고 쓴 글은 아니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걸러서 이해해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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