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연탄재

호랭Horang 2009. 11. 25.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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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연탄은 참 보기 어려운 물건이 되었다. 연탄 이야기를 하면 멀고 먼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리 먼 옛날도 아니다. 회사에서 누군가가 전송해준 비업무성 메일에 연탄재 사진이 붙어있는 것을 보니 왠지 정겹다. 초등학교 때 단독주택에 살았던 나는, '연탄'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아련하게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있다.

Scene #1.
우리집 연탄광은 지하에 있었다. 그것도 대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 마당 안쪽에 깊숙히 자리잡은 지하실이 연탄광으로 쓰이고 있었다. 연탄 배달을 시키면 배달 아저씨는 리어카를 끌고 와서는 연탄을 몇장씩이고 한꺼번에 집을 수 있는 집게로 우리집 지하실에 무겁고 새까만 연탄을 차곡차곡 쌓아주셨다.

다 타버려 가벼워진 살색 연탄재가 지하실에 꽉 차는 날엔 가족들이 모두 함께 연탄재를 날랐다.
지하실에서 대문까지 2~3m 간격으로 나와 내 동생들이 마당에 한 줄로 늘어선다. - 형제가 세 명이라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두 명이었으면 꽤 먼 거리를 연탄재를 들고 뛰었어야 했을 거다 - 지하실에서 꺼낸 연탄재를 날라서 다음 사람에게 넘기고, 또 넘기면 맨 마지막 주자인 아빠는 그 연탄재들을 받아서 쓰러지지 않도록 대문 밖 쓰레기통 옆에 차곡차곡 쌓아두신다. 지금 생각하면 마치 요즘 버라이어티 방송에서 하는 게임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 연탄재 깨지않고 빨리 & 높이 쌓기 이런 게임?  

Scene #2.
그 때는 작은 발바리 한 마리를 마당에서 키웠었다. 이름은 둥이.
털이 하얗던 둥이는 겨울이면 추운 바람을 피해 따뜻한 지하실로 잘 들어가곤 했다. 연탄가스 때문에 그리 좋은 공기는 아니었을텐데도 둥이는 지하실로 들어가는 걸 좋아했다. 검은 연탄들 사이에서 검뎅을 묻혀서 나온 둥이는 늘 회색 얼룩 강아지였다. 눈이라도 오는 날엔 도대체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거지 강아지인가 할 정도로 털이 엉망진창이 되곤 했다. 그렇게 거지꼴을 해가지고도 좋~다고 온 몸이 꺾어져라 꼬리를 흔들며 따라다니던 귀여운 녀석. 우리 가족들은 둥이의 검뎅이가 몸에 묻을까 기겁을 하고 도망다녔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녀석은 자기랑 놀자는 줄 알고 더욱 더 발바리스럽게 애교를 부리며 앵겼다. -.-; 

and etc...
연탄재 하면 뭐니뭐니해도 이 시를 빼놓을 수 없다.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연탄재.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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