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글쓰기에 대한 단상

호랭Horang 2003. 11. 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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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 보면 문성근(극중 이름 생각 안남)이 이런 말을 한다.

'작가는 한이 많아야 한다...'
훌륭한 작가가 되려면 고생도 많이 하고 맺힌 것도 있어야 하는데, 부유한 집에서 고생모르고 어렵지 않게 자란 자신은 태생적으로 작가가 될 수 없다고 한탄하면서 하는 말이다.

난 작가도 아니고, 글쓰기를 내 업이라고 생각지도 않으며, 글이 너무 좋아 없으면 죽고 못살 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습관적인 압박감(?) 비슷한 것을 느낀다. 아마도 내가 평소에 말로 내 생각을 잘 표현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글이라도 쓰면서 나를 표현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추측에 불과할 뿐이며, 그 압박감의 진정한 뿌리가 무엇인지는 나 자신도 정말 알 수가 없다.

사실 요즘에야 일기장이 어느 구석에 쳐박혀 있는지 찾을 수도 없다. 하지만 머리가 커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일기도 거의 매일 꽤 오랫동안 썼었다. 고등학교 때 애들이 지겨워하는 소위 '논술'이라는 것도 나름대로 즐거웠으며, 때로는 내가 쓴 글을 읽고 나의 논리에 스스로 뿌듯한 적도 많았다. ^^; 또 일기쓰기를 멈춘 그 어느 순간 이후로도 틈나는 대로 끄적여 보곤 했다.

Isaac Asimov 나 Michael Crichton 처럼 과학을 전공하여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배우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단순하고 무식한 과학자스럽지 않게 사람들의 호흡을 끌어들이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웠고 나도 그런 글을 쓸 수 있게 되길 바랬다. -그들이 쓰는 글의 종류가 내 맘에 드느냐 들지 않느냐의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말이다-

홈페이지가 생기고 난 다음부터는 '글쓰기'라는 작업에 대해 더욱 더 높은 압력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외롭게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야 맛스런, 제대로 된, 허접데기가 아닌 글이 나온다는 생각에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 그런데 사실 그게 잘 안되서 요즘 좀 답답함을 느낀다. 핑계라면 핑계지만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시간에 치이다 보니 고민할 시간이 없다. 원래 게으르고 귀찮아하는 습성은 많았지만 몸이 게으를 뿐이었는데 요즘은 마음까지 게을러지는 느낌이다. 고민없이 정리없이 하루하루를 흘려보낸다.

'한(恨)'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 주변의 것들에 대한 고민과 공감, 정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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