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결혼생활 5년 동안,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은 그 절반쯤이었을 것이다. 그 절반의 절반 이상의 밤을 나나 그녀 가운데 하나 혹은 둘 다 밤을 새워 일하거나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모든 기쁨과 쾌락을 일단 유보해 두고, 그것들은 나중에 더 크게 왕창 한꺼번에 누리기로 하고, 우리는 주말여행이나 영화구경이나 댄스파티나 쇼핑이나 피크닉을 극도로 절제했다. 그 즈음의 그녀가 간혹 내게 말했었다. "당신은 마치 행복해질까 봐 겁내는 사람 같아요." 그녀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다섯 살 때였나봐요. 어느 날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피아노를 실은 트럭이 와서 우리집 앞에 서는 거예요. 난 지금도 그때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 아빠가 바로 그 시절을 놓치고 몇 년 뒤에 피아노 백 대를 사줬다고 해도 내게 그런 감격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을 거예요" 서울의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내게 이런 편지를 보내시곤 했다. "한길아, 어떤 때의 시련은 큰 그릇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시련이란 보통의 그릇을 찌그러뜨려 놓기가 일쑤란다" anyway, 미국생활 5년만에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신문사의 지사장이 되었다. 현재의 교포사회에서는 젊은 부부의 성공사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벗어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3층짜리 새 집을 지어 이사한 한 달 뒤에, 그녀와 나는 결혼생활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혼에 성공했다. 그때 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대가로. 김한길『눈뜨면 없어라』中 ===============================================================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찌그러뜨리는 바보같은 짓은 말아야 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무언가를 꼭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반쪽짜리 행복이 아닌, 저 충만한 보름달 같은 행복을 찾자. |
반응형
'쓰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능 - ③ (마지막회) (1) | 2005.12.04 |
---|---|
수능 - ② (1) | 2005.11.30 |
수능 - ① (1) | 2005.11.23 |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1) | 2005.08.02 |
퇴근대첩 - People Skill (2) | 2005.06.30 |
매 (1) | 2005.05.26 |
What you need to keep (1) | 2005.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