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사람 2 (부제 : 고릴라이론)

호랭Horang 2003. 6. 17.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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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고릴라 같이 생긴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무도 감히 그 사람 앞에서 고릴라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다가 "오홋 너 얼굴이 고릴라 닮았다~우헤헤헤"라고 했다가는 뼈도 못추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예쁘고 귀여운 사람에게 "고릴라같이 생긴 게!"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그것이 당연히 농담인 줄 알고 웃으면서 받아넘길 것이다.

상대방에게 어떤 농담을 서슴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방이 그것과 심각하게 관계되어 있지 않을 때, 혹은 그러한 상황이 상상 속에서라도 절대 일어나기 어려운 일일 때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 있어서 상호간의 인식이 다를 수 있다는데 있다.

근래에 뜨아한 일이 조금 있었다.
고릴라 이론의 철석같은 신봉자인 나는, 상대방이 나의 말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보니 상대방과 다른 사람들은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소설을 쓰고 있었다. 이런 당황스러울 데가. 허허  

내가 정말 둔하긴 둔한 가보다.
주변 사람들도 다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것을 나만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쯧쯧쯔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뒷담화를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앞섰지만, 다시 곰곰히 생각하니 이 고릴라 이론의 기본 가정을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적용한 나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못했던 나의 나이브함에 철퇴를 내림과 동시에, 나의 risk management 기법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아...정말 고릴라가 싫어지는 갑갑한 6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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