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외국어(영어, 일본어)로 일하기 요령

호랭Horang 2020. 9. 2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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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일본어와 영어다.

예전에 회사 All hands (경영현황설명회 같은 전체 직원 모임)에서 들었던 바로는 Japan office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출신 국적은 50여개국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제 아무리 Diversity를 추구하는 외국계 회사라고 하더라도 아무래도 위치가 일본이다보니 일본사람의 비중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미팅 참석하는 전원이 일본사람이라던지 하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에 주요 언어는 일본어의 비중이 높다. 내 경우 언어를 사용하는 비중을 보면, 말하기는 일본어:영어=6:4 정도인 것 같고, 읽고쓰기는 3:7 정도인 것 같다. (내가 일본어로 글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읽어야 하는 것들은 종종 있기 때문에 30%로 어림잡아 보았다.) 다만, 이 사용빈도는 담당 업무의 성격에 따라 많이 달라지긴 하는데, 내 경우는 PM이라 Counterpart가 미국에 있는 PM과 Engineer들이기 때문에 영어를 사용하는 비중이 평균 대비 높은 편일 것 같다. 또한 부서별로도 많이 다르다. 부서장이 외국인이거나 부서원 중 Non-Japanese speaker가 많은 경우 (Tech team등), 제 1언어는 자연스럽게 영어가 된다.

처음 입사한 부서는 주로 일본 국내 Vendor들과의 비즈니스가 많았던 부서였다. 부서원 40명 중 외국인은 나 한 명. 미국국적을 가진 직원이 한 명 있었지만, 어머니가 일본인인 Half였기 때문에 일본어 쏼라쏼라. 그 때는 나도 일본어를 빨리 습득해서 잘 해야겠다는 압박감이 상당히 컸다. 일본어를 조금 할 줄은 알았지만, 일본 여행와서 쇼핑하고 이자카야 가고 할 때나 썼지 업무적으로 써본 적은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런 일본어 실력으로 인터뷰를 거치고 입사까지 하게 된 건, 정말 무식이 용감이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입사 후 사흘째 되는 날 매니저가 나에게 거래업체에 메일을 보내라고 했다. 나는 일본어로 비즈니스 레터를 써 본 적이 당연히 한 번도 없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다른 직원들이 쓴 메일을 구해서 카피하고, 구글 번역기를 수십 번을 돌려 겨우 초안을 완성했다. 그렇지만 내가 그냥 확 보내버릴 자신이 없어서 매니저에게 초안을 보여주면서, 나 사실 일본어 비즈니스 레터 처음 써보니까 내가 혹시 틀리게 쓰거나 실수한 내용이 있다면 니가 좀 알려달라 라고 솔직히 말했다. 매니저는 놀라면서, 너의 말하기 수준으로 봐서는(?) 메일을 한 번도 안써봤다고 생각지도 못했다며, 오히려 밑도 끝도 없이 일던져서 미안하다며 내 메일을 봐주었다. 그 이후로도 매니저는 일본어에 대해 여러가지 조언과 피드백을 주었고 내가 내 의견을 가미해서 조금 더 수정하거나 하면, 내 일본어가 자기보다 더 문법이 정확하다며 말도 안되게 나를 격려해주는 코멘트를 날려주곤 했다. 신입사원 교육시키는 것도 아니고 어찌보면 정말 귀찮았을텐데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각고의 노력으로 몇 개월만에 내 일본어 능력은 일취월장(?)했으나, 그래봐야 유치원생 수준이 초3 수준이 된 것 정도가 아니었을까. 메일 하나 읽고 쓰는데 수십번씩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썼다 지웠다 하고, 또 회의 중 내가 놓친 것이 있을까 걱정되어 모든 회의를 다 녹음했다. 이렇게 일을 하다보니 너무 힘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데, 아무리 수십 번 고쳐 내놓는다 하더라도 원어민들 따라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결과물은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나 자신도 슬슬 지쳐갔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고 나이 마흔에 남의 나라까지 와서 사서 개고생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사 3개월이 되어 VP와 1:1 면담을 하게 되었다. 서로에 대한 Expectation을 재확인하고, Support가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등을 조율하는 시간이다. 그동안 아무래도 나도 모르게 좀 위축된 것은 사실이었는지, VP는 나에게 너는 좀 많이 겸손한 것 같은데, 사양할 필요 없으니 좀 더 적극적으로 해달라는 피드백을 주었다 (참으로 일본식 화법 ㅋ). 그동안 말귀 못 알아 들을 때 미소로 때우고 넘어가든지, 뭔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괜히 쓸데없이 코멘트 했다가 바보되느니 가만히 있자... 하는 경우가 많았을테니 아마도 옆에서 보기에는 쟤는 너무 조용하구나, 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원래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할 말은 직선적으로 하는 편인데, 그런 내 성격에 가만히 있자면 나는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이사람아... 그래서 나도 솔직히 나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되물었다. 외국인이고 업무경력도 다른 너를 이 회사에서 왜 뽑았다고 생각하니? (그러게, 나도 그게 미스테리야.) 너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너의 경험과 시각으로 다르게 봐주고 새로운 걸 추진해 나가는 것이지, 완벽한 언어나 일본의 비즈니스 매너가 아니야. 그러니 그런 걸로 위축될 필요는 전혀 없어. 더 자신감 있게 앞에 나서서 지적하고 얘기해 주면 좋겠어.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입사 후 지금까지 내가 노력했던 포인트는 나의 약점을 보완하는데 온통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약점이라는 것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강점이 될 수는 없는 포인트이고 (한국회사에 들어온 외국인이 아무리 한국어를 잘한다고 한들 그게 그의 강점이 되겠는가?) 더욱이 회사에서 나에게 바라는 것은 전혀 그게 아니었는데 나는 왜 내가 못하는 것에만 안달했었는지. 그의 대답은 입사 3개월에 자괴감을 느꼈던 나를 지금까지 이 곳에서 버티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외노자로서, 외국어로 일하는 것에 대해, 내가 했던 고민을 하고 있는 동료나 후배들이 있다면 꼭 이렇게 해보도록 제안하고 싶다. 

 

 

 

멘탈: Just the way you are

우리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조금 오버하면, 내가 이 정도로 니네 언어를 "해 주는" 것만 해도 대단하지 않냐 (너는 한국말 1도 못하잖아?), 회사에서 나를 뽑은 이상 너도 나와 함께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배려와 각오를 해주어야겠어, 라는 멘탈이 필요하다. 나는 저 부서에서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워 처음부터 내가 다른 직원들에게 맞추려고 한게 실수였다고 느꼈기 때문에, 부서를 이동할 때는 아예 처음부터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일본어를 잘은 못하니까 메일은 영어로 쓸거고 너희들도 가능하면 나한테는 영어로 메일을 써주면 좋겠다. 회의 때 내가 못 알아듣는 경우 있으면 영어로 중간에 바꿀테니 양해해달라. 이렇게 말하면 내가 영어를 매우 잘하는 걸로 들리겠지만, 그보다는 일본사람들에게도 영어는 외국어이니 서로 완벽하지 않은게 공평하다는 의미다. 
영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은 상대적으로 영어에 대해서 위축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인도사람과 중국사람들의 자신감은 대단하다. 솔직히 발음 정말 구리고 알아듣기 힘든데도 말이다. 내 말을 못 알아듣는건 니 잘못이고 나는 내 할 말을 하겠다, 라는 마인드셋(?)만은 배우고 싶다. 

메모를 꼭 남긴다

회의 내용을 100%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중요한 내용을 빠뜨리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나같은 경우는 처음에는 회의를 녹음 했다. 이건 전 직장에서부터의 습관이긴 한데ㅎ, 임원분들이 워낙 아이디어뱅크이다보니 꼭 나중에 딴 소리(?) 하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녹음을 하곤 했었다. 목적은 달랐지만 아무튼, 시간관계상 나중에 다시 전부 들을 수는 없더라도 혹시 내가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 경우 찾아서 다시 들어보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요즘은 녹음까지는 하고 있지 않지만, 메모를 남겨놓는 것은 꼭 추천하고 싶다. 중요한 내용이면 회의 후에 이메일로 다시 보내달라고 요청하든지, 내가 Note taker인 경우는 내 메모를 공유하면서 혹시 빠진 내용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얘기를 해 둔다. 

서로간의 기대치를 조율한다

서로 생각하는 바, 상대에게 기대하는 바가 다른 상태에서 일을 추진할 경우 (VP와의 면담 에피소드에서 얘기했듯이 업무 전반에 걸쳐서도 그렇지만, 개별 프로젝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나중에 문제가 되거나,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매니저나 부하직원들, 또는 프로젝트팀 멤버들과 Expectation에 대해서 인식을 같이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항목은 아마도 외국어로 일하는 경우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 중요한 원칙이 되겠지만, 특히 외국어를 사용하는 경우 이런 커뮤니케이션은 더더욱 중요하다. 

외국어로 일해서 남의 돈 먹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또 그렇게 못할 일도 아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영원한 동반자, 사랑하는 Google Translator님이 계시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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