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신문 지상을 달구었던 작은 전쟁 하나가 있었다.
2000년 황석영의 조선일보 동인문학상 수상거부로 시작된 황석영-이문열의 논쟁, 그리고 이상한 방향으로 비틀어져 나아가서는 안티조선일보 논쟁에 이르기까지.
그 때 나는 작가 황석영에 대해 어떤 편견도 갖고 있지 않았다. 아니,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단지 난 이문열과 그의 논조를 싫어했기 때문에, 그 반대편에 서있었던 황석영에게 호의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우연히 <오래된 정원>을 발견하고 이것이 바로 그 문제의 작품이었음을 기억해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 조선일보에서 이 작품에 대해 상을 주는 것이, 게다가 현대문학에서 동인의 위치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는 작가에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짬뽕같은 일이었는지를,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깨닫게 되었다.
아마 이 작품이 이념과 역사에 관한 것이기만 했었다면 나는 그다지 큰 감흥을 받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대학교와 작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던 초등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데모가 있는 날이면 최루가스에 눈물을 흘리면서 수업을 일찍 끝내고 집으로 돌려보내졌던 바로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80년대의 직접 체험의 큰 부분이다. 물론 그 후에 왜 그들이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만, 절박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정치적인 성격의 학생운동보다는 학생의 권익과 복지를 위한 학생운동에 익숙한 90년대 학번으로서의 한계일까...
그러나 이 글은 시대를 지배했던 이념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개인들의 삶과 생활 그 자체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그들의 열정적이지만 고단하고 소박했던 삶처럼 작가의 문체도 쓸데없는 화려함과 과격함이 없이 전체적으로 담백하고 수수하다. 그러나 동시에 대단히 맛갈스럽다.
18년간의 현우의 수감생활을 전하는 대목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놀랍기까지 하다. 갇혀 있는 공간에서의 현우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갇혀 있지 않은 공간에 있던 윤희의 이야기는 특히 매력적이다. 지리산에서 활동하던 빨치산이었이었던 아버지, 전향을 하고 가족에게 돌아왔으나 술로 세월을 보내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던 윤희는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으로 시대의 목소리를 외면해 버리지만 아버지의 고뇌를 점차 이해하게 되고 그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의 모습을 현우에게서 읽어낸다. 또한 현우와 같은 길을 가는 영태를 통해 자신도 조심스럽게 발을 담그게 되고, 희수를 통해 그동안 억압되었던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게 되는 것 역시 너무나 자연스럽다.
현우와 윤희가 살림을 시작한 갈뫼라는 공간은 도피의 장소이다. 그러나 그 곳은 여느 은신처와는 달리 긴박하거나 불안정하지 않고 비겁하지도 않다. 오히려 역사와 함께 성실하게 고뇌하는 주체적인 개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며, 아름다운 기억의 목격자이다.
이데올로기의 육중함에 함몰되어 개인성에 대해 말할 수 없었던 시대를 살고 있던 개인들의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삶을 성실하게 추억하고, 이러한 보석같은 알갱이들을 골라내어 미래에 다시 빛나는 구슬을 꿸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한 메세지가 아니었을까.
진지함에 숨막히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묵직함에 감동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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