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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은 상상력의 문제다. 우리의 책임은 상상력 가운데에서 시작된다. 그 말을 예이츠는 이렇게 쓰고 있다. In dreams begin the responsibilities. 그 말대로다. 거꾸로 말하면, 상상력이 없는 곳에 책임은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 나는 어디에도 속박되어 있지 않다. 나는 백퍼센트 자유다. 짊어진 배낭에는 당장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것이 들어 있다.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와 침낭이 들어 있다. 아버지 서재에서 들고 온 현금에는 아직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 데로도 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이 아무 데로도 갈 수 없다는 것을 너도 잘 알고 있다" 까마귀 소년이 말한다. "너는 여기에서 나갈 수 없어. 너는 자유가 아니야. 그런데 너는 정말로 자유로워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
독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공항에서 우연히 이 책을 사게 되었다. 출장 중 상권을 다 읽어버리고 귀국하자마자 하권을 사버렸다는. ㅋㅋㅋ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소설의 주인공 카프카군은 나 자신이며 독자 여러분 자신"이라는 말로 독자에게 보내는 메세지의 서두를 시작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소년이 되고 싶던 열다섯 살의 카프카가 겪는 일들이 그다지 유치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주인공이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키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책 소개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의 '원형'이란 프란츠 카프카가 말한 'das Man'(세상사람)이 아닌, 세상의 때가 묻지 않고 부조리에 물들지 않은, 'das Selbst' (원문에는 '제루프스트'라고 되어있구만... ^^v 독일에 다녀온지 얼마 안되어서 그런지 독일어가 술술 나오는구나야~ 핫핫핫), 즉 '본래의 자기'라고 볼 수 있다."
굳어진 삶의 방식이 아닌 맹목적인 자유에 대한 갈망과 본래의 자기에 대한 탐색, 그리고 성숙을 향해 몸부림치고 질주하는 카프카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소년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아버지로부터는 저주의 예언을 듣고 혼자 살아갈 결심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열다섯 살 소년'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연습을 한다. 수년간에 걸쳐 몸을 단련하고, 책을 읽고 수업을 철저히 들으며 지식을 습득하고, 다른 사람들과 과도하게 친해지는 관계는 유지하지 않으며 혼자 살아갈 준비를 하여 결국 가출을 단행한 치밀하고도 억센 소년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다른 보통의 열다섯 살 소년들처럼 연약하고 흔들리고 상처받는 여린 소년이다. 그는 체념상태로 아버지의 예언을 받아들이고 결국 세계의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도약이란 '뿌리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다시 이 곳, 현실로 돌아오기로 결심하면서 이미 그는 도약하였다고 볼 수 있다. 모래폭풍을 빠져나온 것이라고나 할까.
이 작품에는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하루키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풀어 놓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내고 싶었던 듯 하다. 그러나 외롭고 슬프던 그 모험이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 작가는 그 상황을 모두 빨리 정리하고 싶었는지 서둘러 억지스런 "결말"을 내고자 오버하는 인상을 주었다는 점이다. 또한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과도하게 남성의 본능에 비중을 두고 있다. 페니스가 소년의 의지 전체를 좌우하는 것이 마치 거역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예언인양 서술하는 태도는 다소 거부감을 불러 일으킨다. 또한 오시마 - 등장인물 중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인물인지 알 수가 없는 - 의 입을 통해 엄숙한 교훈의 말까지 직접적으로 해버리고야마는 사족이 이 소설의 옥의 티가 아닌가 생각된다.
해변의 카프카 (상, 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문학사상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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