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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글러 지음 / 유영미 옮김 / 갈라파고스
먹고 산다는 게 참으로 구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굶어죽지 않겠다고,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때가 되면 꾸역꾸역 음식물을 목구멍으로 밀어넣어야 한다는 게 때로는 서글퍼지기도 한다. 소문난 맛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고,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분위기를 즐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 감흥없이 삼시 세끼 밥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처량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나의 이런 생각은 참으로... 배터지게 쳐먹고 배긁는데 내 배가 식스팩이 아니라 원팩이라서 짜증내는 소리였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장지글러가 국제식량기구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을 아들과 문답하는 형식으로 쓴 글이다. 이 책에 따르면 지구 전체적으로 120억명이 먹고도 남을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에도 8억 5천만명 이상이 만성적이고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저자는 이런 불합리한 현실의 원인이 전쟁, 정치적 무질서, 사막화, 신자유주의로 인한 불공정 경쟁 등 사회구조적 문제에 있다고 지적한다. 일회성 원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내부에서 선결되지 않으면 안될 문제들이기에 더욱 개선이 어렵다. 기아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결국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를 바로 세우고, 자립적인 경제를 이룩하는 것 외에는 진정한 출구가 없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기아문제에 대한 나의 무관심을 반성했고, 가진 자들의 횡포에 대해 인식했고, 인류의 인간성 회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글로벌 시민으로서 문제의식을 갖게하는 훌륭한 책이다. 흠...
그런데.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맬서스의 생각같은 선입견을 없애는데 기여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의도처럼 책 내용 중 맬서스 이론에 대한 부분은 상당히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맬서스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같은 보통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나서 받는 느낌은 "맬서스는 완전 미친 놈이고 그의 생각을 따르는 서구사회 역시 정신나간 놈들의 집합체"이다. 정말 그런가???
맬서스는 살아생전부터 죽도록 혹독한 비난을 받았던 경제학자였다. 비난의 중심에 있던 저서 <인구론>에서의 그의 예측 -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 생산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서 머지않아 인구대비 식량이 모자라 결국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예견 - 은 빗나갔다. 그는 부의 재분배와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것이 가난이나 인구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인구증가를 식량 생산수준에 맞추어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억제방법에는 질병, 전쟁같이 사망률을 높이는 '적극적 억제'와 출산율을 낮춰 인구증가를 억제하는 '예방적 억제'가 있다. 물론 맬서스는 개인의 판단과 자발적인 행동으로 인구증가를 억제해야 한다는 예방적 억제를 권장했고 자발적 행동을 격려했다.
맬서스의 이론은 당시 기득권층에게 환영을 받았고,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근거로 악용되어 사회 불평등을 옹호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맬서스는 다만 빈곤과 인구 증가 중에서 전자가 더 큰 해악을 끼칠 수 있으므로 더 작은 해악을 감내하는 편이 낫다는, 아주 이성적이고 계량적인 판단을 했을 뿐이었다.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 지글러는 마치 맬서스가 질병과 배고픔이 이 사회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찬양한 것처럼 묘사했고, 자연도태설은 기아로 굶어죽는 이들에 대한 방치는 당연하다는 이론으로 왜곡했다. 참으로 불편한 극단적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아빠의 설명을 듣는 아들 - 이책은 아들과의 대화이다 - 은 어떤 선입견을 갖게 될지. 저자의 주장이 진짜 맞는지 아닌지 알려면 지금부터 맬서스와 다윈에 대해서 읽어야 되는거니. ㅡ,.ㅡ 공부할 게 쌓여만 가는구나.
쓰다보니 책내용 보다 딴 소리가 더 길어졌네. 또 좀 과격했나? 이 책은 너무 심하게들 호평 일색인게 맘에 안들어 괜히 마이너한걸로 꼬투리 잡아 딴지 한 번 걸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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